공연이 시작되면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해하는 관객을 찾기 힘들다. 세상에 태어나 환상의 놀이 공원을 처음 본 유아들의 표정이랄까? 놀라서 고개를 위로 쭉 빼는 관객,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는 관객 역시 여럿이다. 곡예사가 공중밧줄에 매달려 온 몸을 빙글 빙글 감은 후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려치는 순간, 링에 살짝 손을 거친 후 여신처럼 객석 어디로든 날라가는 순간, 상대의 손바닥 위를 지렛대 삼아 공중 돌기를 하는 순간 객석은 '얼음' 동작이 되어 눈동자는 커지고 입은 무방비 상태로 벌어졌다. 숨이 멎는 정적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김없이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태양에서 날아온 카타르시스’에 속이 후련해졌음은 물론이다.

4월 6일부터 잠실 종합운동장 내 빅탑 시어터에서 올려지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는 인간의 몸에 경외감을 표하게 만들었다. 태양의 서커스가 1984년 첫 공연 이후, 전 세계를 돌며1억 명 이상 관객을 끌어 모은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국내공연은 2007년 ‘퀴담’과 2008년 ‘알레그리아’ 이후 3년 만이다. 2002년 4월 몬트리올에서 초연한 ‘바레카이’ (Varekai)는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바람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또 다른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은 신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신비한 생명체들이 사는 곳에 떨어져 살아남은 이카루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남녀 곡예사 56명이 아트 서커스 쇼에 담겨졌다. 여기에 오스카상 수상자인 에이코 이시오카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의상 디자인은 원시의 숲을 연상시키게도 했지만, 자유로운 바닷 속을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을 들게 한 의상 디자인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충돌질 하기에 충분했다.

‘바레카이’는 공중곡예사들의 현란한 쇼라는 점에서 여타의 서커스와 원형적 틀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국적 분위기를 강화시키며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존재하는 점, 동물을 동원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인간의 기예에 의존하는 점, 관객들의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 뚱뚱이 여자와 날씬한 남자 광대를 배치해 중간 중간 폭소를 터트리게 한 점은 비교적 탄탄한 극적 짜임새를 갖췄다고 평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중간 중간 삽입된 광대극을 내용의 연장선장에서 보는 관객입장에서는 성이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숨막히는 기예만 연달아 보여주게 되면 관객들은 쉽사리 지치게 된다. 이 점을 간파하고 ‘알레그리아’에 이어 광대극을 끼워넣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 저글링 곡예의 일종인 ‘이카리안 게임’의 곡예사들은 상대의 몸을 마치 공처럼 빙글 빙글 돌린다. 관객들의 눈 역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곡예사들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던져지거나 하강한다. 공중회전하며 반대쪽 곡예사와 크로스되기도 한다. 객석에는 잘 노출되지 않는 바닥으로 '퐁' 하고 꺼지기도 한다.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는 극대치까지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진다. 이렇듯 '바레카이'는 아찔하게 숨가뿐 감동을 선사하며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객석을 사로잡았다.

네 명의 여자 곡예사들이 보여주는 3중 공중그네, 세 명의 어린 곡예사들이 서로 연결돼 보여주는 밧줄묘기등에 이어 공연의 마침은 두 개의 러시아 그네를 동원해 보여주는 ‘러시안 스윙쇼’이다. 이 장면에서 어린 시절 힘껏 그네를 타고 올라가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거라는 치기어린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신나게 그네를 타던 곡예사들은 그네에서 튕겨나와 회전한 뒤 반대편 그대로 옮겨타기도 하고 무대 뒷편으로 힘차게 날아올라가 안전하게 착지한다. 곡예사는 분명 1초 내지 2초 사이에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왔다. 관객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소망이 이뤄졌음에 행복해하고 힘껏 박수를 쳤다. 가슴이 후련해지는 밤이었다.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는 '움직이는 마을'이라 불리는 빅탑에서 5월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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