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깊어가는 날, 선배의 초대를 받았다. 학창 시절의 그는 샌님 소리를 들을 만큼 도시적인 취향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캠핑에 꽂힌 후 주말이면 아예 캠핑장을 끼고 살고 있다. 그는 특히, ‘장비의 달인’이라 불릴 만큼 캠핑장비에 대한 식견이 풍부했다.

내가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선배는 얼추 텐트를 다 쳤다. 꼼꼼한 성격답게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타프의 폴에 메달아 놓은 문패였다. 나무에 인두로 지져 쓴 ‘달빛추억’이란 글자가 가슴에 확 박혔다. 그 문패를 보는 순간 나는 몇 년 전 여름에 찾았던 알래스카를 떠올렸다.

북미 최고봉 매킨리가 바라보이는 디날리 국립공원의 캠핑장에 머물 때다. 캠핑장을 산책하다 우연히 캠핑카를 발견했다. 나는 의아했다. 이 국립공원은 공원 보호를 위해 일반차량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국립공원 내에서는 오직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만 다니도록 돼 있다. 그런데 버젓이 캠핑카가 자리한 것이다.

궁금증이 일어 가까이 가봤다. 캠핑카 곁에 인자한 표정의 노부부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의 서툰 영어에도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 캠핑장에 머물면서 캠핑장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관리자도 없는 캠핑장이 언제나 깨끗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또 캠핑카 앞에 세운 커다란 문패의 의미를 알게 됐다. 캠핑카 앞에 세운 문패에는 ‘해리와 필리스의 집’이라 적혀 있었다. 그들에게 캠핑카는 여름 한 철을 나는 집이었던 것이다.

노부부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세월이 가면 나도 저들처럼 늙어갈 수 있을까. 저들처럼 자연에 깃들어 함께 넘어온 세월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낼 수 있을까. 그들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선배의 텐트에 걸린 문패를 보고나자 문패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캠핑에서 돌아온 후 당장 문패 만들기에 들어갔다. 옹이의 흔적이 선명한 나무를 구했다. 적당한 굵기로 자른 후 표면이 반들반들하게 사포질을 했다. 드릴로 구멍도 뚫어 끈을 걸 수 있게 했다.

문패를 만들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름을 정해서 그려 넣기만 하면 됐다. 가족회의를 열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 제목 ‘별 헤는 밤’이 채택됐다. 공룡 이름을 쓰자고 우기던 아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문패에 새길 글씨는 못을 달궈서 쓰기로 했다. 스토브에 벌겋게 달군 못을 리플로 움켜쥐고 정성껏 글씨를 새겼다. 글씨는 생각만큼 잘 새겨지지 않았다. 글씨가 삐뚤어지거나 획의 굵기도 달랐다. 그러나 나는 온 정성을 다해 글씨를 새겼다.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 녀석도 손에 땀을 쥐었다. 마지막 글자를 완성하고 나자 아들 녀석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 우리 텐트에도 이름이 생긴 것이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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