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대로 정말 재미있었다. 소극장의 묘미인 관객과의 밀착된 호흡도 돋보였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맛깔나게 그려낸 멀티맨, 멀티걸의 활약은 공연의 백미였다. 30대와 60대 두 남자를 내세워 세대간의 갈등, 사회문제도 적절히 극 속에 녹여냈다. 관객들은 [락시터]가 던진 그물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인생의 월척을 건진 관객들은 120분간 행복한 탄성을 질렀다. 촘촘한 그물을 제공했는데도 월척을 낚지 못했다면, 단지 화려함에만 끌리는 부류이거나 그도 아니면 하나 하나 까다롭게 따지는 평론가임이 분명할 듯 보였다.

2010년 초연된 뮤지컬 [락시터]는 이근삼 선생의 원작 ‘낚시터 전쟁’에서 모티브를 얻어 위성신 연출이 직접 극본화한 작품. 어깨가 무거운 30대 가제복과 마음만은 늘 청춘인 60대 오범학이 낚시터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관객들을 웃길 뿐 아니라 가슴 따뜻하게 한다.

대작뮤지컬에 '지킬 앤 하이드'가 있다면 소극장 뮤지컬에 '락시터'가 있다. '지킬 앤 하이드'가 관객들을 무서울 정도로 강렬하게 관객들을 빨아들였다면, '락시터'는 상당히 인간적으로 관객들과 조우한다. 오히려 이게 더 한국인들 특유의 징한 '정'을 불러일으킨다. 제복, 범하,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르는 넘버 '쌩쌩쌩'이나 제복과 119구급대원들이 부르는 '실종-여긴 그냥 저수지'는 메시지도 전달하면서도 상당히 흡인력이 강하다.

사실, 위성신 연출가의 작품에 대해 평단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왜? 관객 입장에서 상당히 쉽고 친근하게 극을 풀어내 평론가들의 고차원적인 말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의 공연이 존재하는 이유는 평론가가 아닌 수많은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법. 그렇다고 한번 보고 금새 휘발되는 삼류 코미디 연애 작품까지 우호할 마음은 없다. 이런 점에서 위성신 연출은 기본적인 작품의 질은 지키면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더더군다나 '나 이렇게 대단한 연출가야! 하면서 폼재지 않는다.

연극에서 뮤지컬로 변한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가 일반 관객들을 더욱 폭 넓게 수용한 것 처럼, '락시터' 역시 무심코 지나친 일상의 깨알같은 재미와 의미를 무대로 불러냈다. 천재시인 이상의 일대기를 그린 '오감도'는 원작의 무게감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연극으로 만들어냈다.

연극적 소재가 되지 않아 보일 것 같은 일상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극화하는 것은 위성신 연출의 주특기다. 솔직히 [락시터]의 배경이 되는 ‘낚시터’라는 공간만 해도 여성관객들을 타켓으로 삼는 뮤지컬계에서 보면 어불 성설이다. 그런데 역공략이 먹혀 들었다. 쉽사리 뮤지컬 공연장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중년 남성들도 끌어들이고, 매번 로맨틱 코미디에 열광하는 여성 팬들의 식견도 넓혀줬기 때문이다. 뮤지컬 속 가사 패러디 그대로 ‘지금 이 순간 뮤지컬계의 공식을 던져버린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다.

[락시터]에 나오는 배우들은 총 4명이지만 한 배역에 3명 내지 4명이 캐스팅 돼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박정표, 유승일, 오의식, 이봉련의 조합으로 본 결과 오랜 호흡을 자랑하는 오의식과 이봉련 멀티 커플의 매력이 한층 빛난 무대였다. 더더구나 웃긴 건 ‘와~연기 잘 하내’라고 마음 속으로 말을 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는 어르신께서 똑같이 말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어르신께서는 거침없이 밖으로 내뱉으면서 말했지만 말이다.

오의식의 여장 분장이 생각보다 예뻐서 깜짝 놀란 것도 잠시 오의식과 이봉련의 거침없는 욕설연기, 능청스런 연기와 춤에 관객들 모두 무장해제 됐다. 유승일의 귀여운 할아버지 연기와 느긋한 여유는 극에 안정감을 더해줬고 박정표의 진지한 연기와 뛰어난 노래 실력은 극에 무게감을 더했다. 배우 박정표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말하자면, 2004년 경 아직 박정표가 이름을 알리기 전 배우를 뽑는 오디션 장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오디션 장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배우들(박정표를 중심) 사진을 찍어 그날의 현장 기사로 올렸는데, 몇 년이 지난 후 유명해져 있는 것을 보고 기쁨의 미소를 지른 바 있다.

2011년 축제소극장 공연은 장기적 레퍼토리로 대학로의 소극장 ‘축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락시터]를 선보인다. 소극장 축제에서 월척을 낚은 관객들은 넘버 '비아그라 노래' 그대로 "뮤지컬 락시터야! 커지그라 세지그라, 오래버티그라" 라고 덕담을 건네고 싶어질 것이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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