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밤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들이 있다. 녀석의 꿈은 공룡이 부활하는 것. 그리고 그 공룡과 함께 친구가 되어 더불어 사는 것이다.

▲ 거제자연휴양림의 데크에 쳐진 1인용 텐트

아들을 위해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경남 고성의 상족암. 빨래판처럼 평평한 이곳의 해안가 바위에는 초식공룡의 거대한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것을 기려 공룡박물관을 지었다. 그 곁에 아담한 캠핑장도 만들었다. 캠핑장 앞에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인터넷에서 사이버투어로 박물관을 둘러본 아들의 두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룻밤 잘 거라고 하자 아들 녀석은 입이 딱 벌어졌다. 이어서 터지는 아들 녀석의 환호소리.

“아빠 최고!”

▲ 상족암 캠핑장 앞에는 실물 크기의 티라노사우루스가 서 있다.

이 말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가. 녀석은 분명 오늘밤 잠을 설칠 것이다. 녀석은 꿈속에서 티라노사우루스와 함께 상족암의 해변을 뛰어다닐 것이다.

나에게는 아내가 있다. 연노란 햇살이 사선으로 파고드는 아침, 안락의자에 앉아 원두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즐겨 하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숲이 깊어,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향기로워지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곤 한다.

아내를 위한 캠핑은 거제도로 정했다. 거제도의 남쪽 끝에 자리한 거제자연휴양림. 활엽수림이 우거진 그곳에는 지금 산벚꽃이 활짝 피어났을 것이다. 숲이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산 속에서 산벚꽃이 명주처럼 희고 흰 꽃망울을 터트린 모양은 박수근의 그림처럼 정겹다. 파스텔로 슬쩍슬쩍 칠한 것처럼 몽환적이고 나른하다.

나는 그 풍경 속으로 아내를 밀어 넣을 작정이다. 햇살이 노자산 자락을 넘어 텐트를 비추는 이른 아침. 소리 없이 텐트 문을 열고 나가 원두커피를 끓일 것이다. 주전자의 물이 끓을 무렵, 침낭 속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를 가만히 깨워, 몸을 기대면 요람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락의자로 안내할 것이다. 아내가 그 의자에 앉아 숲이 조용조용 봄을 길어내는 모습을 보게 할 것이다.

혹여 계절이 급한 발걸음을 놀려 산벚나무의 꽃잎이 함박눈처럼 날린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에게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책해 보라고 권할 것이다. 꽃잎이 주단처럼 깔린 길을 거닐며 봄날을 사색케 할 것이다. 그의 몸속 깊은 곳까지 피톤치드가 스며들도록 가만 놔둘 작정이다. 굴곡진 세월의 모퉁이를 돌면서 지치고, 멍들고, 생채기 난 우리의 인생에도 봄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겨울을 이겨낸 뒤에 만나는 봄날의 이 사무치는 생명의 환희를 마음껏, 마음껏 즐기게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학동의 몽돌 해변에 갈 것이다. 그곳에는 수박만한 돌들이 깔린 해변이 있다. 그 해변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 때마다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토한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바다, 남지나해를 지나 태평양과 잇닿아 있을 그 푸른 바다를 가족에게 선사할 것이다.

▲ 학동몽돌밭에는 크고작은 둥근돌이 깔려 있다.

아들은 그 해변에서 물수제비를 뜰 것이다. 발이 시릴 만큼 바다는 차갑겠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물고기 다음으로 물을 사랑하는 녀석이다. 녀석은 몽글몽글한 돌을 보며 아직 부화하지 않은 공룡의 알을 떠올릴 것이다. 파도에 떠밀려온 투명한 미역 줄기를 건져내서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또 긴 나뭇가지라도 발견하면 낚시꾼 흉내를 낼 것이다.

그렇게 녀석이 해변을 뛰며 웃음을 쏟아내는 모습을 아내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내 가슴에는 행복이 밀물지듯 밀려온다. 분명, 아들과 아내를 위해 마련한 봄날의 캠핑이건만, 가슴이 뛰는 것은 오히려 나다.

▲ 해먹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누군가 캠핑이 무엇이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가족'이다. 이 땅에서 캠핑만큼 가족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캠핑만큼 아빠의 자리를 되찾아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캠핑만큼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없다. 그래서 캠핑은 가족이다.

지금은 완연한 봄날. 가족을 되찾기 좋은 계절이다. 행복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갈 시간이다. 만약 그대가 아빠의 자리를, 남편의 자리를 되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캠핑을 떠나라. 그곳에 가족이 있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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