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다. 오페라 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초등학생들, 아줌마, 아저씨들이 ‘키득 키득’ 웃으면서 극을 감상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이 코미디인 것인가, 아니면 관객들의 이성을 꿰뚫어 공감의 웃음을 유발한 것인가. 25.26일 창동열린 극장에서 공연된 서울시 오페라단의 [돈 빠스꽐레](연출 이경재)는 그동안 오페라에 대해 잊고 있었던 웃음을 콸콸 쏟아내며 흥분하게 만들었다.

작품은 서로 속고 속이는 코미디 극이지만, 음악적으로는 품격이 넘치는 벨칸토 시대 최후의 명작이다. 돈 많은 늙은 독신남 돈 빠스꽐레(한경석)가 조카 에르네스트(박준석)와 노리나(강혜정)의 결혼을 반대하자 돈 빠스꽐레의 주치의자 친구인 말라테스타(최강지)가 계략을 써서 빠스꽐레를 골탕먹인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건 돈을 쓰기 싫어하는 구두쇠 영감이 최대한 돈을 아끼면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고 싶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우리의 빠스꽐레 역시 여자의 외모만 보고 ‘혹’해 잘못된 결혼을 하게 된다. 돈만 모을 줄 알았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빠스꽐레는 연애 9단 노리나에게 당하게 된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공개적으로 망신받게 되는 순간이다. 관객들은 빠스꽐레를 마음속으로 조롱한 후 대 놓고 웃어주면서 희극의 정수를 맞보게 된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돈 빠스꽐레]는 흔히, 목욕탕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라고 하는 ‘중후한 오페라 목소리’보단 익살이 가득한 목소리로 관객을 홀린다. 특히 파를란도(말하는 목소리에 가깝게 노래하라는 음악용어로 많은 양의 대사를 아주 빠르게 노래하는 것) 장면이 나오면 객석은 우아한 오페라 무대에서 정신없는 랩을 듣는 듯 해 뒤집어진다. 중후한 음색의 바리톤 가수가 파를란도를 하는 순간, 희극적 효과는 200%였다. 유명한 3중창 ‘곧 알게 될 거야’ 가 불려지면,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곧 알게 될 거야’라고 환청이 들리는 듯 하다.

여기에 주역 가수 네 사람의 누구 하나도 뒤지지 않는 조화로운 앙상블은 저렴한 티켓 값 몇 배 이상으로 감동을 몰고 왔다. 이번 오페라 티켓은 R석 1만5천원, S석 1만원으로 책정됐다. 게다가 창동열린극장 회원으로 가입하면 20%할인을 받아 R석을 1만2천원에 감상할 수 있다. ‘오페라 공연은 비싸서 못 본다’는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티켓값인 셈이다.

돈 빠스꽐레 역의 바리톤 한경석씨의 뭔가 어수룩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익살스런 연기와 가창, 소프라노 강혜정이 순진과 농염의 양 극단을 오고가며 선보인 완벽한 연기와 아름다운 음색은 관객이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번에 오페라 [돈 빠스꽐레]와 안면을 텄다면, 호암아트홀이 외국 유명 오페라를 스크린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메트 오페라 온 스크린’이 희소식이 될 듯하다. 호암아트홀에서 4월 1일부터 3일까지 상영하는 [돈 파스콸레]는 2010/11 시즌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최신작이다. 이외 메트의 공연을 생중계로 볼 수 있는 이번 프로그램의 첫 상영작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3/18~3/20)이다.

한차례 서울시 오페라단의 작품에 매료되고,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남자 주인공이 오페라 감상 중에 소프라노가 부른 아리아(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눈 앞에서 실제로 듣고 싶다면 서울시 오페라단의 차기작을 주목하길.

단 하루 만에 죽음으로 내몰린 연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 토스카(4/21~2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 마크 깁슨(Mark Gibson)의 손길을 거쳐 음악성이 강조된다. 현재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전속주역 테너 박기천, 스칼라 극장에서 수 편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한 소프라노 임세경, 대한민국 대표 바리톤 고성현이 가세해 오페라 초보자들의 귀를 무장해제 시킬 예정이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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