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중국 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펼쳐진 F1 2015 중국 그랑프리에서 메르세데스의 해밀턴이 우승을 차지했다. 해밀턴은 연습 주행부터 퀄리파잉, 레이스까지 그 누구보다 빨랐고, 메르세데스는 지난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며 페라리에 대한 분명한 우위를 확인했다.

 

그런데 뒤쫓는 페라리의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분명히 앞서고 있는 메르세데스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가볍게 1, 2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도 분위기가 심각했던 것은 메르세데스 쪽이었다. 팀메이트 해밀턴과 로스버그 사이에 다시 갈등의 조짐이 보이고, 팀의 수뇌부도 뭔가 불안해 보인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는 노골적으로 페라리를 집중 견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한참 앞서고 있는, 앞으로 한동안 앞서나갈 것이 확실한 메르세데스는 페라리를 견제하고 있는 걸까? 먼저 어떤 견제가 시작됐는지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 메르세데스가 페라리를 견제하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알아보자.

 

▲ 페라리의 베텔을 집중 견제하기 시작한 해밀턴

 

메르세데스의 견제가 시작됐다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에게 완패한 메르세데스는 2015시즌에 대한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프리시즌 테스트부터 호주 그랑프리를 거쳐 말레이지아 그랑프리까지 메르세데스가 초지일관 목표로 했던 것은 ‘안정적인 레이스의 관리’였다. 퀄리파잉에서 어떻게든 1, 2위를 차지해 프론트로를 독점한 채 레이스를 시작하고, 레이스에서 다른 팀들에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메르세데스는 파워 유닛을 중심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차량’의 제작에 집중했고, 프리시즌 테스트는 어딘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퍼포먼스에서는 분명히 앞서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이런 전략은 셋업에서도 드러났다. 어차피 퀄리파잉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면 되니까, 보다 안정적으로 높은 다운포스 셋업을 추구했다. 레이스에서의 페이스나 추월 시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퀄리파잉에 올인한다면 단 한 랩을 달렸을 때의 기록은 더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 그랑프리만 해도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는 것 같았다. 퀄리파잉에서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고, 레이스에서는 다른 팀 차량의 뒤에서 달릴 일이 없었다. 프론트로를 독점한 채 레이스를 시작한 메르세데스는 페라리를 30초 이상 따돌리고 여유 있게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레드불이 추구했던 전략은 메르세데스에게 완벽하게 이식된 듯 했다.

 

그런데 말레이지아 그랑프리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메르세데스는 페라리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다른 차량 뒤에서 달릴 때 추월이 너무나 어려운 자신들의 셋업에 발목이 잡혔다. 레이스 페이스가 앞서는 페라리는 퀄리파잉에 비중을 더 줄여 레이스에서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자신들이 앞서 있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메르세데스의 완벽한 패배였다.

 

결국 중국 그랑프리에서 메르세데스는 높은 다운포스 셋업을 포기했고, 레이스 페이스에 집중했다. 베텔이 언더컷, 즉 예정보다 일찍 타이어를 교체해 차익을 노리는 작전을 시도 할 때마다 메르세데스의 드라이버들은 바로 반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메르세데스는 페라리보다 크게 앞서는 데는 실패했지만, 레드 팀이 파고들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페라리를 집중 견제한 덕분에 메르세데스는 1, 2위를 독차지하며 레이스를 마쳤다.

 

▲ 2014시즌의 핫이슈였던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어색한 동행

 

페라리가 메르세데스의 내분을 만든다?

 

메르세데스는 중국 그랑프리를 통해 퀄리파잉에서 압도적인 스피드도 확인했고, 레이스에서 우승컵을 차지해 말레이지아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메르세데스의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퀄리파잉 중 팀 라디오 메시지를 놓고 불만을 토로했던 로스버그는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차례 해밀턴의 페이스에 문제를 제기했다.

 

메르세데스의 핏월은 해밀턴을 압박했고, 해밀턴은 일단 조용히 레이스를 마쳤지만, 상황이 정리된 후 다시 로스버그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메르세데스의 수뇌부는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라이버들에게 선을 그어주지 않았다. 레이스에서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들이 겪은 상황을 살펴보면 페라리가 어떻게 해밀턴과 로스버그 사이에 갈등을 유발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그랑프리의 첫 랩 직후 해밀턴, 로스버그, 베텔, 라이코넨의 순으로 정해졌고, 결과적으로 순위는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해밀턴이 레이스 극 초반부터 타이어 보호에 나섰다는 점이다. 보통 경기 초반 선두권 드라이버들의 간격이 몇 랩 동안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국 그랑프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해밀턴은 금요일 오후 연습 주행 결과를 통해 페라리의 레이스 페이스와 타이어 관리가 메르세데스를 앞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레이스 초반 해밀턴이 페이스를 끌어올려 달아난다면 몇 랩 동안 간격을 더 벌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얼마 후 타이어의 수명이 다해 핏스탑 전략이 붕괴되고 페라리에게 추격을 허용할 수 있었다. 바로 말레이지아에서와 같은 결과가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해밀턴이 서행하자 로스버그는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뒤따르는 드라이버는 앞 차에서 전해지는 열기로 타이어 관리가 더 어려워졌고, ‘마찬가지로’ 타이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로스버그는 해밀턴과의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그사이 베텔이 로스버그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게다가 베텔의 언더컷을 의식해 해밀턴과 로스버그가 교대로 대응한 것은 결과적으로 로스버그가 해밀턴에 도전할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페라리를 신경 쓰느라 로스버그는 해밀턴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퀄리파잉에서 해밀턴보다 4/100초 뒤진 것이 죄였다. 따지고 보면 레이스 페이스가 뛰어난 페라리에 대한 견제가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배틀을 불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 팀 역량 면에서 메르세데스를 따라잡은 페라리

 

페라리, 어디까지 왔나?

 

일단 2015년 4월 중순 기준으로 메르세데스는 분명히 큰 격차로 페라리를 앞서 있다.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다시 메르세데스가 크게 앞서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던 일이었다. 대표적인 파워 서킷 중 하나인 사키르에서 펼쳐질 바레인 그랑프리가 되면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격차가 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메르세데스의 수뇌부가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중재에 나서 화해를 시키면 이제 더 이상 같은 문제가 없을까?

 

문제는 페라리가 계속된 업데이트로 메르세데스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스페인 그랑프리에서의 에어로 업데이트와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파워 유닛 업데이트 결과에 따라 예상보다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더 내놓을 카드가 얼마 남지 않은 메르세데스는 업데이트가 조심스럽다. 자칫 업데이트가 잘못돼 자신들의 최대 강점인 밸런스가 흐트러진다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페라리의 퍼포먼스는 팀 역량 전체로 봤을 때 메르세데스를 거의 따라잡았다. 업데이트 속도뿐 아니라 핏스탑 속도에서도 페라리는 10개 팀 중 가장 빠른 팀이 됐다. 정확한 경기 예측과 상황 판단이 동반된 핏월의 전략은 오히려 메르세데스보다 앞서 있다. 차량의 전체적인 퍼포먼스에서 메르세데스에게 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밸런스 한 가지만 놓고 본다면 거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이제 페라리가 확실히 뒤쳐진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2014시즌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큰 격차가 남아있는 엔진과 파워 유닛 부문과 전통적으로 약했던 리어 다운포스 부문 정도가 남았다. 그런데 페라리가 착실하게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있는 파워 유닛은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두 세트째 파워 유닛으로 교체하면서 메르세데스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많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다운포스 부문만 어떻게 수습이 된다면 전체 팀 역량에서 페라리가 메르세데스를 앞서는 순간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메르세데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페라리의 리더십

 

시즌 중반 페라리가 메르세데스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

 

캐나다 그랑프리까지 격차가 크게 좁혀지지 않았더라도 페라리는 시즌 중후 반까지 많은 업데이트를 순서대로 남겨두고 있다.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마라넬로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고, 페라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팀워크를 과시하고 있다. 객관적인 전력이 정말 나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메르세데스가 불안해 할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다음 칼럼에 소개할 아리바베네의 리더십은 현재 페라리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반면 메르세데스는 최고의 인력들을 모아놓은 상태에서 왠지 하나의 팀이라는 느낌이 부족하다.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관계는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베텔, 라이코넨의 관계보다 불안해 보인다. 니키 라우다와 토토 울프, 패디 로로 이어지는 집단 지도 체제의 구성원들은 각각 더없이 훌륭한 사람들이고 팀이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뭔가 급박한 순간이 오거나 당황스런 문제에 부딪히면 서로 다른 얘기를 꺼내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바로 지금 현재가 그렇다.

 

하나뿐인 독일 F1 팀의 가장 뛰어난 독일 드라이버로서 로스버그는 메르세데스가 밀어줄 만한 위치에 있다. 말이 필요 없는 현역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해밀턴은 메르세데스의 리더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메르세데스에서 누가 퍼스트 드라이버이고 누가 세컨드 드라이버인지 따지는 것은 터부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시즌 종반이 될 때까지 로스버그가 해밀턴을 서포트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메르세데스의 모래알 같은 리더십은 두 드라이버의 교통 정리에 상당한 애를 먹을 것이다.

 

메르세데스의 내분 아닌 내분은 페라리에 기회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한 명의 드라이버가 포인트에서 훌쩍 달아나지 못한다면 페라리의 ‘밀어주기’ 기회가 나올 수도 있다. 이미 지난해 일촉즉발까지 갔던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불화가 레이스에서 두 드라이버의 소모적인 경쟁으로 이어진다면, 레이스 페이스에서 앞선 페라리에겐 언제든 기회가 올 수 있다.

 

더구나 시즌 중후 반 차량의 퍼포먼스 격차가 좁혀진다면, 레이스 운영에 도가 튼 베텔과 라이코넨이 도박적인 전략으로 조심스런 메르세데스를 당황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페라리는 더 잃을 것이 없지만, 메르세데스는 이겨야 본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페라리의 부활과 함께 메르세데스의 견제가 이어지면서 F1 2015시즌은 매우 재미있게 전개 되기 시작했다. F1에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하루 아침에 순위가 뒤집히기는 어렵겠지만, 서서히 간격을 좁혀오는 상대가 더 신경 쓰이는 법이다. 메르세데스는 긴장하고 있고 페라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적이 아니라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여러 명이 힘을 모아 노력한 결과겠지만, 몇 달의 시간이 지나 ‘기적이 일어났다’고 얘기할만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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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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