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F1은 아우디의 F1 복귀 루머로 들썩였다. 루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WEC와 DTM 등에 참전하고 있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 아우디가 2016 시즌 F1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루머는 아우디가 F1에 복귀하면서 현재 거취가 모호한 알론소를 영입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더해져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아우디가 WEC와 DTM에서 철수하고 그 예산으로 F1 팀 운영을 충당할 것이라는 다소 구체적인 예측도 함께 나왔다.


루머의 여파가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아우디는 성명을 발표해 자신들은 현재 참가 중인 WEC에서 철수할 의사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애초에 아우디의 F1 참전 루머의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우디의 루머에 대한 빠른 대응에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디가 처음으로 F1에 진출할지 모른다는 루머는 여러 관계자들과 올드 팬들 사이에서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우디가 F1에 진출하기를 바란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런 사람들의 바람이 루머의 근원이 아닌가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F1 참전 기록조차 없는 아우디의 F1 진출 루머에 그토록 흥분했던 걸까?
 

▲ 최근 10여년간 내구 레이스를 지배한 아우디

모터스포츠 각 분야에서 맹활약한 아우디


1980년대부터 아우디는 진출하는 모터스포츠 분야마다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아우디 브랜드가 정립된 이후 첫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던 WRC에서는 아우디의 콰트로가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현재 일반 판매되는 아우디 승용차의 이미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콰트로는 랠리 카를 통해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콰트로는 랠리에서 시작해 투어링카까지 범위를 넓히며 맹위를 떨쳤는데, FIA는 곧 아우디의 독특한 네 바퀴 굴림 차량과 다른 회사의 두 바퀴 굴림 차량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우디는 콰트로 V8을 투입해 1990년과 1991년 DTM에서 챔피언을 배출했고, 규정 변화에 맞춰 이 무대 저 무대를 옮기며 각종 투어링 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1996년에는 A4 콰트로가 BTCC와 STW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많은 성과를 일궈낸 아우디는 미국에 진출해 특히 스포츠카 레이싱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00년대 초반 SCAA 월드 챌린지에서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우디가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낸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내구 레이스다. 1999년 아우디는 르망 24시간으로 대표되는 최 정상급 내구 레이스에서 도전하기 위해 R8R과 R8C를 선보였고, 2000년에는 R8이 첫 르망 24시간 우승을 일궈냈다. 2000년 아메리카 르망 시리즈마저 석권한 R8은 3년간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이후 내구 레이스를 완전히 지배하면서 2014년까지 15시즌 동안 13 차례의 르망 24시간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 그랑프리 레이싱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아우토 우니온

아우토 우니온의 부활을 기대하는 사람들


하지만 아우디는 1950년 F1이 탄생한 이후 단 한 번도 F1에 도전한 기록이 없다. 다른 독일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가 1950년대 중반 맹활약한 뒤 2010년 복귀 후에는 올 시즌에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BMW와 포르쉐도 F1에 도전한 역사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 레이스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르망 24시간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하더라도 F1만큼은 아우디의 영역은 아니었던 셈이다.


사람들이 아우디가 F1에 진출했을 때 좋은 성적을 내리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과거 아우토 우니온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아우토 우니온은 현재 아우디의 전신으로 1928년 네 개의 링으로 상징되는 네 개의 군소 자동차 회사가 합병되며 탄생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측면 지원 속에 타입 A부터 타입 D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차들과 함께 그랑프리 레이싱에서 맹활약했다.

실버 애로우라 불렸던 메르세데스-벤츠와 쌍벽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실버 애로우로 활약한 아우토 우니온은, 같은 은색이지만 미드십 엔진과 공격적인 차량 디자인으로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으며 독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수많은 우승과 1936년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 베른트 로제마이어와 나중에 합류한 타찌오 누볼라리 등은 메르세데스-벤츠와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그랑프리 레이싱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아우토 우니온의 부활로서 아우디가 F1에 참전한다면, 1930년대 그랑프리 레이싱의 황금기가 재현되는 구도라는 점도 재미있다. 1930년대 그랑프리 레이싱은 알파 로메오, 메르세데스-벤츠, 그리고 아우토 우니온의 3강 경쟁 구도였다. 메르세데스는 2010년부터 F1에 참전 중이고, 1930년대 중반 알파 로메오의 차량으로 경쟁에 나선 팀이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였다. 여기에 아우토 우니온의 후예 아우디만 더해진다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채워지는 셈이다.
 

▲ 193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아우토 우니온의 베른트 로제마이어

보다 짜릿한 언더독의 승리


물론 1930년대의 그랑프리 레이싱이 현재 F1의 모태가 된 직계 조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80년 가까운 긴 시간은 상황을 많이 바꿔놓았다. 아우토 우니온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엔진과 미드십 엔진 디자인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알파 로메오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경쟁자들과 차별화에 성공했지만, 지금 아우디가 F1에 들어오면서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디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처음부터 아우토 우니온이 ‘언더독’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정면 승부가 다소 무모해 보일 정도로 약했던 아우토 우니온은 노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로제마이어 등의 재능에 기대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쳤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약자가 강자에게 도전하고 때로 승리를 거두는 그림이 아우토 우니온에게 있었다.

1980년대부터 모터스포츠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아우디 역시 늘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랠리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에도 전통적인 강자들을 물리치고 무려 그룹 B 시대에 두 차례나 왕좌에 올랐고, 르망 24시간 무대 역시 진출 2년차에 첫 우승을 차지한 뒤 80%가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F1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넘을 수 없는 산은 아니기 때문에 아우디에게 기대를 걸어봄 직 하다.

 

▲ F1 최고의 드라이버 알론소가 아우디로 향한다면?

아우디의 F1 진출을 유혹하는 주변 상황


아우디가 F1 진출 루머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주변 여건을 생각하면 아우디가 F1에 진출하는 것이 합리적인 그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단 현재 아우디는 르망 24시간을 아우르는 WEC에 주력하고 있지만, 같은 폭스바겐 계열사인 포르쉐마저 WEC에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그룹 경영진에서 교통 정리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토요타의 경쟁력이 올라오고, 닛산마저 WEC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폭스바겐 그룹이 같은 무대에 두 개의 브랜드가 제살 깎기 경쟁으로 경쟁에서 패할 경우 과감한 결단을 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라는 거함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봤을 때에도 아우디의 F1 참전은 그림이 나온다. 루머에도 나온 것처럼 폭스바겐으로서는 F1에 아우디, WEC에 포르쉐, 그리고 DTM에 폭스바겐 브랜드로 각각 참전하는 것이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경쟁 구도는 물론 자사의 전반적인 홍보에서 도움이 된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2014년 메르세데스가 F1을 완전히 지배하면서 승용차 판매와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을 받는 것을 보며 배가 아팠을지도 모른다. 폭스바겐으로서는 후발 주자에 언더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우디가 메르세데스-벤츠와 거의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면, 간혹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F1으로서도 아우디의 참전은 바라고 바라던 소식이 될 수 있다. 최근 10년간 다섯 개 자동차 제조사가 F1에 철수하는 사이 메르세데스 단 한 회사만이 F1에 참전한 것을 생각하면, 모터스포츠에서 명성을 쌓은 자동차 브랜드가 하나 더 F1 팀을 꾸리는 것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여러 중소 F1 팀들이 심각한 경영난으로 붕괴 위기에 빠져있는 것 역시 비교적 경제적 배경이 든든한 팩토리 팀의 필요성을 부추긴다.

알론소의 거취도 아우디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알론소가 2015년 어디로 갈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2016년의 행방은 더욱 묘연하다. 현 소속팀 페라리는 물론 맥라렌이나 메르세데스도 알론소를 노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함께한다면 어지간히 차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 한 늘 우승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2016년 아우디가 F1에 진출하면서 알론소와 같은 탑 드라이버를 영입할 기회가 있다면 팀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장기적인 성적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루머가 충분히 나올법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16년 F1 진출 루머는 일단 아우디 측에서 부인한 상태다. 하지만 F1에서 ‘절대 F1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발표는 드라이버와 팀이 ‘계약 기간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주장만큼이나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운 얘기다. 현재 아우디의 F1이 진출 가능성이 유의미한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F1 팬의 입장에서는 인지도 높은 자동차 브랜드이자 아우토 우니온의 DNA를 계승한 아우디가 F1에 참전해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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