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의 시초 모델이 된 공랭식 카브레이터 엔진의 356C 시승기

지난 가을, 일본에서 온 반갑고 귀한 손님을 마중하기 위해 서울에서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보슬비가 내리는 부산항에 도착했다. 

스산한 영국의 날씨같은 보슬비가 내리는 부산항에 '둥둥둥둥' 울리는 우렁찬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분'이 오신걸 단박에 알아챘다. 탄생 50년을 맞은 '그 분'의 등장은, 짙은 회색의 겉모습이 날씨와도 딱 어울리는 신사(紳士)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니 약간 왜소해 보였으나 그 위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멀리서도 포스가 느껴지는 '그 분'은 바로 '포르쉐 356C'이다. 

1931년 포르쉐를 창립한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에 의해 개발된 1955년 첫 스포츠카 356A가 356B를 거쳐 356C로 세대교체하여 탄생한 1963년 모델이 356C이다. 그 뒤로 911로 이어져 지금의 911 시초가 되는 모델이다. 

그렇다. 기자가 만난 356C는, 중년을 훨씬 뛰어넘은 50세의 기념비적인 자동차를 만난 것이다. 

외형은 폭스바겐의 '비틀(Beetle)'과 닮았다. 그도 그럴것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비틀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 356C의 외형은 비틀과 닮았지만, 성능은 고성능 스포츠카로 개발된 모델이다. 1.6리터 90마력의 공랭식 엔진을 뒤에 장착한 RR 모델이다. 1950년 비틀 모델이 40마력인걸 감안하면 90마력은 대단한 출력이다. 

옆모습을 보면, 비틀보다는 앞 코가 길쭉하다. 그래서 작아도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실내 또한 넓은 편이다. 

문을 열 때는 손잡이를 잡고 엄지 손가락으로 버튼을 꾹 눌러야 딸깍 소리를 내며 걸림쇠가 풀리는 소리가 난다. 5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의 문을 여는 느낌이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리모델링 및 복원을 거쳐 무척 깨끗했다. 시트는 원래 직물커버 였으나 가죽 시트로 커버를 교체했다고 한다. 

운전석에 앉아보니, 시트는 헤드레스트가 없고 등받이 높이는 어깨보다 낮다. 승합차의 접이식 보조석에 앉아있는 듯 불안한 느낌이다. 안전벨트도 어깨에서 시작하는 3점식 벨트가 아닌, 2점식 벨트로 비행기 좌석벨트와 같다. 그 당시엔 스포츠카로 생산된 차인데, 과연 운전자를 잘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운전하는 동안은 시트가 상당히 부드럽고 편안했다. 특히나 시트 하부와 차체 사이에 스프링이 있어 노면의 요철 등을 운전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완충해 주는 것이 놀이기구를 탄 듯 재미있다. 마치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버스 운전기사의 시트가 출렁출렁 거리면서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보는 것과 다르게 시트가 꽤나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 놀랍다. 

시동키는 스티어링 휠의 왼쪽에 있다. 요즘 자동차는 오른쪽에 있는게 보편적인데, 스포츠카로 개발된 '356C'는 레이싱 주행에 빠른 출발을 위해 왼쪽에 시동키가 있다고 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티어링 휠은 림이 굉장히 가늘고 지름이 크다. 트럭의 그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하지만, T자 모양의 크롬 도장 스포크 휠 가운데 포르쉐 마크를 보면서 림을 두 손으로 쥐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차를 타고 있으니 말이다. 

시동을 걸어 보았다. 열쇠는 책상서랍 열쇠처럼 생긴 것도 재미있다. 클러치를 밟으며 키를 돌려 시동을 걸면 차 뒷편에서 '푸르르릉~'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곧이어 '둥둥둥둥~' 북 울리는 소리의 공랭식 캬브레이터 엔진의 아이들링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수동 4단 미션의 변속기는 버스의 기어노브처럼 생겨서 바닥에 지팡이가 꽂혀있는 모양이다. 길죽한 기어 노브로 변속할 때는 동작을 크게 해야된다. 특히나 손 모양은 손등이 보이도록 잡는게 아니라 손바닥이 보이도록 아래쪽에서 감싸 쥐면서 포크볼 잡듯 둥근 기어봉을 잡고 기어를 넣는 것이 편했다. 기어는 생각보다 체결감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1단과 2단 변속할때마다 제대로 결속이 된건지 익숙해질 때까진 쉽지 않았다. 

출발할 때 느낌은 설렘 그 자체였다. 이 차가 움직인다는 것 자체도 놀랍고 직접 운전을 한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처음 듣는 공랭식 엔진소리에 가슴이 더욱 뛰었을 것이다. 

낯선 엔진과 낯선 미션에 적응을 하자 356C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이 차의 놀라운 점은 고속에서도 안정감있게 달린다는 것이다. 5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올리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속 120킬로미터로 속도를 올리는데 무리가 없었다. 차체의 단단함도 한 몫 했다. 다만, 아쉬운건 저속에서는 너무 뻑뻑하고, 고속에서는 유격이 심하게 느껴진 파워 스티어링 휠 기능이 없는 핸들링이었다. 

물론, 50년 전에 만들어진 356C에는 요즘 신차처럼 편의장비나 안전장치들이 전무하다. 솔직히,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에어컨이나 에어백은 물론 없으며, 파워 스티어링 휠이나 파워 윈도우도 아니다. ABS나 TCS도 물론 없다. 심지어 오른쪽 사이드 미러도 없다. 우측 차선 변경시엔 룸미러를 본 뒤 고개를 직접 돌려서 다른 차량을 확인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면 풍절음은 엔진 소리와 합쳐져 옆사람과 대화가 힘들다. 뒷 좌석은 지붕이 낮아 뒷 유리창에 머리가 닿는다. 

하지만, 356C를 운전하면서 어떤 편의장비나 안전장치가 없어서 불편하다거나 불안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나 즐거운 운전을 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면서 타임머신을 조종하고 오는 느낌이었다. 

어릴적 추억 중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가족 소풍을 가면, 할머니 왼팔에 팔장을 끼고 할머니 걸음걸이에 내 걸음을 맞추며 소풍 내내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356C를 타면서 느낀 기쁨이 이런거 아닐까? 차를 모신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어떤 대상을 돌보고 맞춰주는, 어린왕자의 '길들여지기'처럼, 내가 차에 길들여지는 것, 그것이 내 차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타임머신 여행은 단 몇 시간이었지만, 그 감흥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이 356C는 3일간의 부산, 서울, 인제 서킷 등 바쁜 한국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소소하고 세밀한 복원과 수리를 마치고 올 봄 다시 한국에 들어 올 예정이다. 

 

김진아 기자 〈탑라이더 jina_kim@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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