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판매중인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중 가장 비싼차는 SLS AMG다. 그러나 SL63 AMG를 타보면, 굳이 SLS AMG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부담스러운 걸윙도어나 소프트톱 대신 하드톱 천장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장엄한 배기음까지 들을 수 있다. 

지금이야 SLS AMG가 최고의 스포츠카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지만 사실 정통성을 놓고 보면 'SL'이라는 이름이 주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SL클래스야 말로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를 이끌어 온 산증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

60여년의 시간동안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카의 자리를 지켜온 SL클래스를 시승했다. 시승한 모델의 판매가격은 2억650만원이다. 

◆ 60년의 역사…신형 SL클래스의 핵심은 경량화

SL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독특한 세그먼트다. 우선 슈퍼카에 버금가는 고성능 엔진을 차량 앞쪽에 장착했고, S클래스 수준의 고급스러움과 편의사양, 하드톱이 적용된 2인승 로드스터다. BMW는 이 정도 레벨의 2인승 로드스터를 만들지 않고 아우디는 엔진을 뒤에 싣는다. 가장 성격이 비슷한 차를 뽑는다면 페라리 캘리포니아 정도다.

SL클래스의 시작은 1957년 등장한 2인승 로드스터 300SL부터다. 300SL은 자동차 역사 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자주 거론되는 모델이다. 양산차 최초로 걸윙도어가 장착됐고 경주용차를 일반 양산형 모델로 개조해 판매한 첫 번째 사례기도 하다.

▲ 1세대 SL클래스(300SL)와 2세대 SL클래스

1963년부터 출시된 2세대 SL클래스는 지붕의 가장자리가 지붕 중앙에 비해 약간 도드라지는 특징으로 ‘파고다 루프(Pagoda Roof)’라는 애칭이 붙었다. 3세대에 와서 처음으로 8기통 엔진이 장착됐다. 이 모델은 1972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18년간 생산됐다. 4세대 모델부터 AMG 모델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7.3리터 V12 엔진이 장착된 AMG 모델은 52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다.

5세대 모델에는 바리오 루프(Vario Roof) 시스템이 장착돼 16초만에 하드탑을 열거나 닫을 수 있다. 5세대 모델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이를 기본으로 2012년 6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 SL클래스에 적용된 하드탑. 신호 대기 중 작동 시키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선이 집중된다.

현행 6세대 모델의 특징은 경량화다. 메르세데스-벤츠 최초로 차체가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 전복사고 시 안전을 위해 A필러에 고강도 강철 튜브를 쓴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알루미늄이다. 또 경량화를 위해 트렁크는 탄소강화섬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 차체 무게는 100kg 이상 감량되면서 비틀림 강성은 20% 향상됐다고 메르세데스-벤츠는 설명한다.

가벼워진 차체 덕분에 수많은 첨단 사양을 집어넣고도 차량 무게는 가벼워졌다. 이는 성공적인 엔진 다운사이징으로도 연결됐다. 결과적으로 신형 SL63 AMG는 더욱 흠잡을 곳이 없는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하는 디자인을 제외하면 말이다.

◆ 언뜻 보기에도 ‘억’소리 나는 디자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전통적인 비율을 따랐다. 보닛이 무척이나 길고 트렁크는 짧다. 운전석은 차체 중앙에 위치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보닛이 끝이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오버행은 극도로 짧아서 스포티한 디자인이 더욱 강조됐다.

▲ 정통 로드스터의 비율. 보닛이 길지만 운전하는덴 무리가 없다.

차체 길이는 현대차 아반떼와 비슷한 정돈데 너비는 현대차 제네시스와 비슷하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차의 성능을 가늠하게 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패밀리룩에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5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워낙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인지 신형 SL63 AMG의 디자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소비자들도 더러 있다. 어쨌든 언뜻 봐도 이차가 엄청나게 비싼 차라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 실내. 레이아웃, 소재, 마감 등 모든 것은 최고 수준.

실내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작정하고 고급스럽게 꾸민 듯 하다.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느껴진다.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부분은 고급백을 만지는 듯 부드럽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면서 스포츠카에 어울리게 세부적인 디자인이 변경됐다. 이전 세대 모델과 비교했을 때 훨씬 세련됐고 고급스러움도 강조됐다. 실내는 온통 가죽으로 뒤덮였고 바느질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정교하다.

▲ 주행에 있어 핵심적인 기능이 모여 있는 부분.

◆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긴장감은 고조된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피스톤의 진동과 배기음의 파장이 자하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에 배경음악이 없다면 울거나 혹은 긴장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늦은 밤, 방문 걸어 잠그고 보는 동영상도 소리가 없으면 흥분은 고조되지 않는다.

▲ 낭만을 즐기는 오픈카지만 빠르다. 무섭도록 잘나간다.

SL63 AMG의 소리는 너무나 중독성이 강하다. 어떤 면에선 최고급 뱅앤올룹슨 사운드 시스템 적용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V8 바이터보 엔진의 날카로운 소리와 남성미 넘치는 배기음이 동시에 고막을 울린다. 소리는 발끝을 자극한다. 치솟은 엔진회전수와 속도, 거친 사운드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혈당을 상승시키고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킨다.

소리에 심취해 가속페달을 계속 밟고 있으면 어느덧 최고속도 부근까지 속도계 바늘이 올라가 있다. 신형 SL63 AMG는 운전이 훨씬 쉬워졌고 안정감도 크게 높아졌다.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부드러운 GT에서 감당이 벅찬 폭발적인 스포츠로도 변할 수 있다.

▲ 분명 초고성능 스포츠카지만 에코 모드까지 탑재됐다. 또 컴포트 모드에서는 여느 벤츠와 다름없이 부드럽고 아늑하다.

주행모드를 스포트+로 변경하고 ESP 버튼을 한번 누르면 스포트 핸들링 모드가 발동한다. 전자장비의 개입을 최대한 늦춰 주행하면 중독성 강한 오버스티어를 느낄 수 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음과 동시에 500마력이 넘는 힘이 뒷바퀴를 회전시킨다.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이 전달되다보니 똑바로 직진하기 힘들 정도로 휘청거린다. 동시에 목은 순간 뒤로 젖혀지고 몸은 시트에 바짝 밀착된다.

▲ 거대한 엔진.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 아니라 담당자가 손수 엔진을 조립하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기어가 변속될 때마다 SL63 AMG는 거친 숨을 토해낸다. 더욱 과격한 몸놀림에 목이 탄다. 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스티어링휠은 반발력은 거세지고 무거워진다. 차체의 회전력은 기대 이상이다. 코너를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다. 예상보다 더 잘 돌고 더 많이 꺾인다. 스티어링휠 방향에 따라 긴 앞머리가 기민하게 움직인다.

속도에 따라 서스펜션의 높이가 달라지고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중력가속도의 반대방향으로 전자식 시트의 허리지지대(사이드서포트)가 불쑥 튀어나와 운전자를 똑바로 잡아준다. 기본적인 달리기 성능 외에도 각종 첨단 편의사양이 주행을 돕는다.

▲ 마법의 시트. 차를 과격하게 돌려도 시트에서 지지대가 튀어나와 몸을 잡아준다. 운전석과 보조석 모두 작동된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통해 원하는 만큼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우수한 브레이크 시스템과 단단한 하체, 낮고 넓은 차체 구조 덕에 급브레이크 상황에서도 노즈-다이브(Nose-Dive) 따위는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성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 성능에 새삼 놀라게 된다.

◆ SL클래스를 갖는 것은 곧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든 것을 갖는 것

메르세데스-벤츠는 누구보다 다양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소형차 A클래스부터 대형차의 대명사 S클래스, 오프로드의 아이콘 G클래스, 슈퍼스포츠카 SLS AMG까지. 그들의 오랜 역사에서 태어난 수많은 명차 중에서 SL클래스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미지 리더로 굳게 자리하고 있다.

▲ SL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의 살아있는 역사다.

SL클래스를 갖는다는 것은 곧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든 것을 갖는 것과 같다. 그래도 이차가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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