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가 인제 스피디움 서킷을 달리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차들이 있지만, 사실 그 중 태반은 그저그런 자동차들이다. 별반 특색도 없고 그리 잘난 구석도 없이 얼굴만 조금씩 다른 차들을 일년 내내 시승하자면 그도 고역이다. 그래도 자동차 기자로 살면서 위안이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런 차를 타는 특권을 누릴 때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그 이름도 거룩한(?)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다.

- ML63 AMG란 무엇인가

벌써 여러차례 시승하지만, 볼 때마다 거대한 덩치에 위압감을 느낄 정도. 유럽인들이 선호할 크기는 아니다. 사실 이번이 3세대인 M클래스는 독일 다임러가 미국 크라이슬러와의 제휴했을 당시 만들어진 차로 처음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만 생산돼 온 차다. 말하자면 철저히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차였던 셈이다. 당시 M클래스는 초기 판매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미국 공장 특유의 품질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이후 부랴부랴 새 모델을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평가는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지난해 새롭게 출시된 이번 M클래스는 이전 모델의 아쉬움을 모두 씻어내는 듯 대폭 변화를 가져왔고, 비로소  존재감이나 성능면에서 모두 최고 수준의 SUV로 자리매김했다. M클래스의 발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요즘 미국 프리미엄 자동차를 사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높아져서다.

▲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의 뒷좌석 공조장치

크고 무뚝뚝한 차를 선호했던 층마저 이젠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수준의 실내공간, 캠핑카나 보트를 쉽게 끌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갖춰야 만족한다. 또 본격적인 SUV 형태를 갖추는 동시에 스포츠카와 맞먹는 주행성능도 함께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면까지 지니고 있다. 그래선지 이번에 메르세데스-벤츠는 ML63 AMG라는 고성능 모델을 내놓고 SUV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정도의 고성능을 내도록 했나보다.

- 최고의 SUV, 서킷을 정복하다

차를 테스트하기 위해 강원도 인제의 인제스피디움 서킷을 달려보았다. 핸들의 견고함은 둘째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엔진 출력이 한방에 쭉 치솟고, 특유의 AMG 배기음이 맹수의 포효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전해주는 듯 하다. 차가 지나갈 때 옆에 있자면 굉음과 함께 갈라진 공기가 태풍처럼 몰아쳐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어지간한 스포츠카로는 감히 덤빌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운전자를 자극하는 배기음 때문일까.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짓이기며 차를 가속 시켜본다. 역시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시속 240km까지 쭉 올려붙인다. 몸은 등받이에 꾹 눌리고 가속G가 몸을 찌릿찌릿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극도로 매력적이다. 서킷의 직선거리가 짧아서 더 밟아보지는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ML63 AMG는 다른 63 AMG 모델과 마찬가지로 5.5리터 V8 직분사 트윈터보 엔진이다. AMG 전용으로 개발 된 90도 V형 엔진에 수냉식 인터쿨러를 소형화 해 장착했다. 최고 출력은 525마력, 최대 토크는 700Nm로 강렬해 두말 할 것없이 SUV 최강의 성능을 발휘한다. 국내는 도입되지 않지만 '퍼포먼스 패키지'를 장착하면 터보압력을 높이고 캠 샤프트를 변경해 557마력, 760Nm의 출력까지 낸다. 경쟁차인 포르쉐 카이엔 터보S가 550마력인데, 이를 염두에 둔 세팅으로 보인다.

기어는 AMG의 7단 자동변속기를 이용했으며, 요즘 유행하는 듀얼클러치에 비해 터보압을 활용하기 쉽고 캠핑카 등을 견인하는데도 유리하다.

▲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를 타고 급제동을 해보고 있다.

차체와 서스펜션에서도 AMG의 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듯 하다. 차를 가속해 단 한번이라도 핸들을 돌려보면 차체가 얼마나 강인한지 즉시 알 수 있는 수준. 총 중량이 3톤이 넘는 대형 SUV인데다 초고속에 오프로드까지 고려된 차량이므로 서스펜션과 섀시는 돌처럼 단단해야만 했을 것이다. 서스펜션은 딱딱하거나 부드럽다는 정도의 단순한 잣대가 아니라 무게감이 느껴지는 최고급의 승차감이다.

일반 M클래스와 같은 차체와 서브프레임을 사용하고 있지만, 서브프레임과 차체를 연결하는 부위나 서스펜션 마운트, 엔진 마운트 등 결합부는 모두 AMG 전용으로 교체돼 있어 운전자에게 이런 신선한 느낌을 전해주는 듯 하다.

▲ 메르세데스-벤츠 ML63 AMG의 전면 인테리어

- 친환경, 성능까지 사상 최강의 SUV

시내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차를 정차하면 '아이들 스톱'이 작동해 엔진이 정지한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즉시 시동이 다시 걸리는데,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워 놀랄 정도다. 공회전 하는 동안의 엔진은 무척 조용해서, 엔진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엔진은 연비와 정숙성에서도 큰 폭으로 향상됐다. 525마력의 이 SUV를 와인딩로드에서 끝까지 밟아가며 주행해도 대략 리터당 6~7km 정도는 나와주는 느낌이다. 물론 시속 200km 언저리의 초고속으로 1시간 가량 주행해보니 연비는 대략 3~4km 정도로 크게 떨어지긴 했다.

상시 4륜구동 시스템 전륜에 40%, 후륜에 60%를 배분하는데, 이로 인해 코너에서 조금 더 날카로운 주행을 즐길 수 있다. 또 에어 서스펜션을 갖추고 있는데, 버튼을 눌러 차체를 오르내리게 할 뿐 아니라, AMG 전용으로 튜닝 돼 주행 상태에 맞춰 댐퍼의 감쇄력과 롤의 양을 컴퓨터가 최적화한다.

▲ ML63 AMG에는 21인치 휠이 달려있다.

조금 가볍지만 매우 정교한 핸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프리 세이프티 브레이크,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등이 장착돼 있다. 모두 S클래스에서 온 것들이다. 더구나 21인치의 초대형 휠에 장착된 타이어는 공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이 단단하게 생겼다. 결국 이 차는 오프로드보다 온로드 주행을 중시한 차인 셈이다.

실내도 놀랍다. 최고급 가죽시트라는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압도적 품질의 가죽시트와 꼼꼼한 스티치를 보자면 이 차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만하다. 어떤 좌석에 앉아도 화려함이 그지 없는데, 뒷좌석에 앉아도 열선시트나 온도 조절이 가능한 에어컨 등은 물론이고, 좌우에 각기 장착된 모니터가 호사스러움을 더한다.

▲ ML63 AMG는 오프로드 주행에도 안심이 되고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

이 차의 라이벌이라면 BMW X5M, 혹은 포르쉐 카이엔 터보, 레인지로버 정도가 있겠지만, 이 차들이 오프로드에서 주행하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 반면, ML클래스라면 도심은 물론 대자연도 거뜬히 정복해낼것만 같은 느낌이다. ML63 AMG야 말로 SUV가 갖춰야 할 덕목인 '자유로움'에 한발짝 더 가까운 차가 아닐까 생각됐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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