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세금 정책은 대부분 엉망이지만, 그 중 가장 엉망진창인 부분은 자동차 관련 세금, 특히 매년 납부하는 '자동차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리는  2500만원짜리 쏘나타보다 6700만원짜리 BMW 520d의 세금이 적게 나온다. 1600만원짜리 아반떼와 3200만원짜리 폭스바겐 제타의 세금도 거의 같다. 값비싼 고급 수입차를 산 사람보다 저렴한 국산차를 산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거두다니 이런 역조세가 없다. 

모두 배기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해괴한 조세 정책 때문이다. 이제 '배기량'은 그저 엔진 실린더내의 공간을 말하는 것일 뿐 기름을 소비하는 양을 뜻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고급차를 가늠하는 기준은 더더욱 아니다. 이같은 엉터리 조세 기준은,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30평 초가집의 세금을  강남 30평 아파트와 똑같이 하겠다는 것과 같다. 배기량이 높은차가 고급차였던 70년대에 만들어진 법규가 아직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셈이다.

저렴한 차를 사고도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억울한 소비자들에게도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 보인다. 국산차들이 작은 엔진으로 더 높은 힘을 내는 차를 만들고 있어서다. 현대가 2.0리터로 3.0리터 엔진을 능가하는 출력을 내는 쏘나타 터보를 내놓더니, 르노삼성은 단 1.6리터로 2.5리터급 출력을 내는 SM5 TCE를 내놨다.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 1.6리터 엔진을 장착한 르노삼성 SM5 TCE를 탔다.

▲ 르노삼성 SM5 TCE

- 원래부터 성능은 더 좋았다

국산 중형차는 총 4종. 판매 순위는 당연히 현대 쏘나타, 기아 K5, 르노삼성 SM5, 쉐보레 말리부 순이다. 그러나 성능이 반드시 이 순위대로라 하기는 어렵다. 우선 국산차 품질수준이 최근 몇년간 비약적으로 향상돼 이들 차들은 대다수 수입차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경우도 많다.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국산차가 모두 상향평준화 된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마케팅 능력이 탁월한 현대기아차는 수치로 표현 가능한 엔진의 최대 출력과 연비, 휠베이스 등을 큰 폭으로 향상시켜 큰 반향을 얻었다. 반면 다른 쉐보레와 르노삼성은 쉽게 표현되지 않는 핸들링과 주행감각, NVH 등을 우직하게 향상시켜왔다.

르노삼성 SM5의 경우도 숫자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거나 CVT는 가속감이 밋밋하다는 식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실제 타보면 가속력이 경쟁사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경쟁 차종에 비해 월등히 조용한 실내와 우수한 서스펜션 느낌에 놀랐다는 반응도 많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기본 성능은 원래부터 더 좋았던 셈이다.

이번에 나온 SM5 TCE는 기존에 단점으로 지적되던 부분까지 모두 최고로 끌어올렸다. 엔진을 1.6리터 직분사로 낮추고 터보를 장착해 최대 출력을 190마력까지 올리고, 변속기는 요즘 가장 각광받는 DCT 변속기로 바꿔 치고 나가는 느낌을 향상시켰다. 이 정도면 자동차 마니아들이 꿈에 그리던 최적의 세팅이라 할 만 하다.

- 터보 엔진과 DCT의 조합, 괜찮을까

가속페달을 꾹 밟아 차를 급출발하려는데, 느낌이 좀 이상하다. 느긋하게 가속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쭉 하고 튀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터보차저와 DCT의 조합 때문이다.

터보차저란 배기에서 나오는 힘으로 프로펠러(Turbine)를 돌려 그만큼 공기와 연료를 실린더에 더 집어넣는 기술이다. 더 많은 공기가 들어오니 적은 배기량으로도 큰 힘을 낼 수 있는 반면, 극히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는 일반 엔진보다 오히려 힘이 떨어진다. 이것을 흔히 터보랙(Turbo-lag)이라고 표현하는데, 최근의 터보 엔진은 터보랙이 크게 줄어들어 일반 운전자들이 쉽게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자동변속기는 엔진 회전을 조금씩 미끄러뜨리면서 구동계에 전달하는 장치(토크컨버터)가 있어 충분한 엔진 회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차를 출발시킬 수 있게 되었다.

터보차저와 DCT 변속기를 장착한 결과는 출발이 조금 어색한 느낌을 낳았다. DCT변속기는 일반 자동변속기와 달리 낮은 RPM에서도 변속기와 엔진이 비교적 직결감을 갖고 있어 차를 급출발 시킬때는 엔진회전수가 그리 오르지 않은 상태로 차가 출발하면서 약간 둔한 느낌이 들게 된다.

그러나 차를 더 가속해보니 완전 다른 느낌이 찾아왔다. 190마력의 엔진은 일반 중형차에서 맛보던 150~160마력대 엔진보다 훨씬 강력한데다 DCT변속기는 직결감이 우수해 가속감에서 일반 중형차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특히 기어노브를 수동으로 조작하면 치고 나가는 느낌이 더 강력해진다. 수동 조작이 매력적인데도 불구하고 패들시프트가 없는 점이 아쉽다. DCT라고 해도 변속이 착착 이뤄지는 스타일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중형차에 맞는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여기 사용된 1.6리터 엔진은 닛산의 최신 기술력이 집약된 엔진으로, 닛산 주크 등에 장착될 뿐 아니라 심지어 300마력으로 업그레이드 돼 닛산 델타윙 레이스카에도 장착될만큼 검증된 엔진이다. DCT 변속기도 BMW 등 여러 브랜드가 사용하는 게트락 제품이다. 하지만 중형세단에 이 조합은 처음인만큼 내구성은 좀 더 지켜봐야겠다. 

- 달리는 느낌, '극강의 우수함'

고속도로에 들어섰을때 파워트레인의 우수함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겠다. 시속 100km가 넘는 도로에서 추월을 하기 위해 재가속을 하는데도 충분한 힘이 뒷받침돼 여유롭게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사실 최근 자동차들은 모두 잘 달린다. 시속 100km에서 불안한 차는 없다. 하지만 이 차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서도 매우 안정적이었고, 핸들을 보타할 이유 없이 꾸준하고 정확하게 직진했다.  사실 최근 현대기아차는 핸들 조작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 된다.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거나 유격이 커서 자꾸만 보타해야 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데, 르노삼성이 만들고 있는 핸들 감각을 적극적으로 배우면 좋겠다.

구불거리는 국도에 진입했을때는 속도를 조금씩 높여봤다. 말도 안되는 높은 속도에서 핸들을 돌려봐도  별다른 미끄러짐 없이 돌리는 대로 따라와 다시 한번 놀랐다. 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언더스티어가 극도로 낮은데다 기울어짐도 느끼기 어려웠다. 부드러운 승차감으로 인해 서스펜션이 무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단단하게 받쳐줬다.

다만 브레이크는 민감한 느낌은 아니고, 부드럽게 서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운전자에 따라선 브레이크가 둔하다고 느낄수도 있겠다.

▲ 르노삼성 SM5 TCE

출력면에서는 2.5리터 엔진을 능가하지만, 정숙성 면에서는 역시 조금 아쉽다. 이전 SM5가 너무 우수해선지 시속 110km 이상으로 달릴 때 풍절음이 간간이 느껴진다. 차에는 보스(Bose) 프리미엄 오디오가 장착돼 있는데 국산 중형차 중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만 하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SM5의 실내 폭은 보통, 길이는 긴편이지만 국산차 쏘나타, K5 등 경쟁차는 중형차라 보기 힘들만큼 길기 때문에 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금 짧은 편이다. 하지만 경쟁차들이 쿠페스타일 디자인을 추구해 뒷좌석 머리공간을 희생한것과 달리 전통적 세단 디자인으로 머리공간이 넉넉해 실제 앉으면 좁지 않다. 실내 디자인도 전형적인 유럽 느낌이어서 좋아하는 축과 싫어하는 축이 크게 갈리는 편이다. 이런 부분은 백번 말해 소용없고 차를 일단 타봐야만 알 수 있겠다.

표시연비는 13km/l(복합기준)로 기존 SM5 2.0 모델 (12.6km/l)보다 오히려 우수하고 국산 가솔린 중형차를 통틀어도 가장 우수한 연비를 자랑한다. 가격은 2710만원부터로 책정돼 SM5 2.0리터급 모델 중 중간급인 LE보다 50만원가량 비싸고 가장 비싼 모델인 RE에 비해선 오히려 조금 싸다. 2.5리터 차를 넘는 힘을 감안하면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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