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엔 여전히 진한 레이싱의 피가 흐른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바뀌고 여러번 주인이 바뀌었어도 달리기 실력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슈퍼차저 엔진은 시종일관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운전자를 자극한다.

독일 브랜드의 고급차가 전세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도로 위에서 만나본 재규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 재규어 XF 3.0 슈퍼차저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주는 재규어의 XF 3.0 슈퍼차저(SC)를 시승했다. 시승한 모델의 판매가격은 7620만원이다.

◆ 첫인상…예상 밖의 부드러움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 저 멀리 웅크리고 있던 재규어가 눈을 부릅뜬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손에 꽉 차는 두툼한 가죽 스티어링휠을 더듬다 이내 시동버튼을 눌렀다.

예상하지 못한 과격한 사운드가 지하주차장을 가득 채운다. 공회전 상태에서도 웅웅거림이 귓가를 자극한다. 어느새 봉긋 솟은 드라이브 셀렉터가 밋밋했던 실내의 분위기를 바꾼다.

▲ 시동을 걸면 솟아오르는 드라이브 셀렉터. 디테일이나 촉감도 훌륭하다.

서행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마치 빨리 가속페달을 밟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주차비 정산을 위해 차를 세우자 이내 시동이 꺼진다. 재규어에도 스탑&스타트가 장착되다니 역시 친환경이 대세다. 슈퍼차저 엔진의 연비를 향상시키는데는 한층 도움이 된다.

▲ 3.0리터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340마력(ps), 최대토크 45.9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재규어에 따르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5.9초.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는다. 재규어 XF 3.0 슈퍼차저(SC)에는 최고출력이 340마력이나 되는 고성능 엔진이 장착됐다. 하지만 거동은 고성능을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ZF 8단 변속기가 적용되면서 한층 성격이 온화해졌다. BMW에서도 아쉽게 느끼는 부분이지만, 8단 변속기는 피끓는 젊은이로선 너무 심심하게 느껴진다. 엔진회전수를 높이며 달리기 위해선 두어단 기어를 내려줘야 한다.

▲ 매끈하게 빠진 바디라인. 재규어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타입이다. 노면이 불규칙한 영국에서 태어난 차답게 진동이나 충격은 잘 잡아낸다. 그러면서 코너에서도 꽤 자세를 유지한다. 속도를 높여도 안정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맛보기에서는 편안하고 부드러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웅웅거리는 엔진소리가 고속주행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놨다.

◆ 재규어의 진가는 다이내믹 모드에서

마음껏 포효하는 재규어의 모습을 보고 싶다. 드라이브 셀렉터를 우측으로 돌려 S모드로 바꾼 후 ‘체커기’ 표시가 된 다이내믹 모드 버튼을 누른다. 2개의 계기바늘이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인다. 조금 전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망설임 없이 먹잇감에 달려드는 재규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트립컴퓨터에 표시된 체커키. 다이내믹 모드가 활성화됐다.

급가속을 해도 좀처럼 휠스핀이 발생하지 않는다. 넘치는 힘은 곧바로 노면으로 전달된다. 시속 300km까지 표시된 계기반 어느 곳이든 바늘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넘어선 초고속 영역에서도 힘이 넘치고 반응도 여전하다. 고속주행 안전성도 부족함이 없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노면에 바싹 붙어 달리는 느낌이다. 

▲ 차체 길이는 상당히 긴 편. BMW 5시리즈가 4899mm인데 XF는 4961mm나 된다.

엔진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워졌지만 과격한 정도는 아니다. 잘 다듬어졌지만 조금 더 귀를 자극해도 괜찮겠다.

엔진과 브레이크 성능이 우수해 코너 진입과 탈출 속도가 꽤 빨라진다. 이에 반해 서스펜션이 부드러워 코너를 도는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다이내믹 모드를 활성화해도 부드러운 서스펜션의 성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기본 장착된 피렐리 피제로(P-ZERO) 타이어는 매우 만족스럽다.

▲ 서스펜션은 부드럽다. 요즘들어 유럽차는 오히려 부드러운 승차감을 강조하고 있다.

◆ 재규어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독일차 너무 흔해”

S타입의 후속으로 2007년 공개된 XF는 큰 디자인 변화를 겪었다. 고풍스럽던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매끈해진 바디라인에 날렵한 헤드램프와 ‘J블레이드’로 불리는 LED 주간주행등,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부드러움 속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은 이색적이다. 독일차에선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 LED 주간주행등과 일체감을 주는 LED 테일램프. 알파벳 J를 형상화했다.

실내에서는 클래식한 느낌이 전달된다. 정갈한 가구를 보는 듯하다. 나뭇결이 일정한 원목과 알루미늄 소재로 마감된 실내는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감 있고 고급스럽다. 필요에 따라 자동으로 개폐되는 송풍구도 매력이다.

▲ 간결함 위에 고급스러움을 덮었다. 각 부분의 세부적인 디자인이나 마감도 우수하다.

시트나 스티어링휠, 대시보드 등에 적용된 가죽은 촉감이나 마감이 우수하다. 실내에 사용된 소재에서는 재규어의 고집이 느껴진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경쟁차종이 워낙 넓은 탓도 있겠지만 뒷좌석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차체 길이나 휠베이스에 비해 뒷좌석 공간이 좁은 것은 아쉽다.

▲ 내비게이션의 위치도 적절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용도 쉽다. 또 실내 곳곳에 들어오는 무드등으로 편의성을 더욱 높였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로 대표되는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의 볼륨은 대단히 커졌다. 자연스럽게 재규어가 그 틈새를 노리고 있는 형국이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판매에 급급해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실수가 없으니 오히려 프리미엄의 가치를 더 잘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 프리미엄의 가치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재규어 XF.

XF는 재규어의 엔트리 모델로 수행할 역할이 많다. 다양한 소비자층을 끌어 모으면서도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도 엔진과 구동방식을 달리한 7개의 XF 모델이 판매중이다. 가격대도 6590만원부터 1억4670만원까지 편차가 크다.

시승한 3.0 슈퍼차저는 재규어의 슬로건인 ‘Fast Beautiful Car’가 잘 반영돼 시종일관 운전자의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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