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유럽의 슈퍼카를 초라하게 만드는 차가 있다. 이 차에는 ‘안되면 되게하라'는 무서움 집념이 녹아들었고 레이싱카의 피가 흐른다. 또 레이싱에서의 신화적인 업적은 이 차를 전설로 만들었다. 포르쉐를 타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보다 더 많은 슈퍼카를 압도하는 스포츠카가 된 닛산의 자존심, GT-R을 소개한다.

▲ 닛산 GT-R

◆ 프린스 스카이라인에서 닛산 GT-R로

닛산 GT-R의 역사는 1957년부터 시작된다. GT-R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스카이라인은 사실 닛산의 것이 아니었다. 비행기 제조사였던 후지정밀공업이 처음 스카이라인을 소개했고 회사명을 프린스로 바꾼 후 스카이라인이 각종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며 유명해졌다.

프린스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모터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이 절실했다. 프린스는 1963년 메이신 고속국도 개통을 기념해 열린 제 1회 일본 그랑프리에 참가했지만 꼴찌로 경기를 마감했고 오히려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이후 프린스는 절치부심한 끝에 스카이라인 2000GT S54 레이싱카를 내놓는다. 오로지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이차는 1964년 제 2회 일본 그랑프리 GT2 클래스에 참가해 돋보이는 성능을 발휘한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50마력에 가까웠다. 경기에 참여한 다른 일본 브랜드의 레이싱카보다 빨랐다.

▲ 프린스 스카이라인 2000GT. 딱 봐도 고성능차에 어울리는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포르쉐였다. 한 드라이버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포르쉐 904를 들고 경기에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포르쉐 같은 본격 스포츠카를 마주하긴 쉽지 않았다. 오로지 달리기 위해서 제작된 포르쉐 904에게 스카이라인은 무릎을 꿇고 만다. GT-R과 포르쉐 911의 경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예상 밖의 일격을 얻어맞은 프린스는 더욱 활활 타올랐다. 엔지니어들은 포르쉐 904와 스카이라인을 비교분석하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비행기 개발자였던 몇몇 엔지니어들은 항공기에 활용되던 용접기술을 도입하고 알루미늄 바디와 부품으로 경량화에 성공한다. 더욱 강력해진 엔진은 22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다. 또 포르쉐와 매우 유사한 디자인까지 적용했다.

▲ '타도 포르쉐'를 외치며 포르쉐의 디자인을 슬쩍 베낀(?) 프린스 R380. 역시 일본은 모방의 원조.

1966년 제 3회 일본 그랑프리. 포르쉐 906과 스카이라인 R380은 경기 초반부터 치열한 선두싸움을 펼쳤다. 하지만 피트인 후 급유 과정에서 격차 벌어졌고 스카이라인 R380은 포르쉐 906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무리하던 포르쉐 906는 결국 가드레인을 들이박으며 리타이어했고 스카이라인 R380은 다른 출전 차량을 무려 3바퀴나 따라잡으며 우승을 차지한다.

같은 해 프린스는 일본 정부정책에 따라 닛산으로 합병된다. 하지만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다수의 직원들과 자동차 라인업은 유지됐다. 또 스카이라인이란 차명을 유지한다는 조건도 추가됐다.

1969년, 프린스 기술자들에 의해 첫번째 GT-R이 탄생된다. 스카이라인 R380의 엔진을 공도용으로 개량해 장착한 1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2.0리터 DOHC 엔진으로 최고출력 160마력, 최대토크 18.0kg·m의 성능을 발휘했다. 이후 스카이라인 GT-R은 계속적으로 발전했으나 오일쇼크, 배기가스 규제 등으로 오랫동안 생산이 중단되는 우여곡절도 거쳤다.

▲ 닛산 스카이라인 GT-R R34. 그야말로 전설. 1000마력까진 우습게 출력을 높일 수 있다.

16년 동안의 오랜 숙면이 끝나고 1989년 3세대 스카이라인 GT-R(R32)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탄탄한 차체, 트윈 터보 엔진, 아테사 사륜구동 등은 현행 GT-R까지 이어진다. 4세대 스카이라인 GT-R(R33), 5세대 스카이라인 GT-R(R34)는 1000마력이 넘는 튜닝에도 견딜 수 있는 뛰어난 내구성을 갖춰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전설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 닛산의 비밀병기, GT-R의 탄생

2007년 도쿄모터쇼. 지금은 도쿄모터쇼의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 당시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쇼였다. 닛산은 이 자리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GT-R을 공개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질주하는 GT-R의 인캠이 화면을 통해 공개됐다. GT-R은 포르쉐 911 터보의 7분 40초의 벽을 허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많은 기자들은 이에 열광했고 일본인들은 닛산이 만들어낸 괴물에 환호했다.

▲ 2007년 도쿄모터쇼에서 모습을 드러낸 GT-R.

GT-R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린스 스카이라인이 ‘타도 포르쉐’를 외친 것처럼 GT-R도 개발초기부터 고성능 스포츠카의 아이콘인 포르쉐 911 터보를 목표로 삼았다. 단순하게 빠른 것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든, 누가 운전대를 잡던 포르쉐보다 빠르고 안정적이어야 했다. 또 훨씬 합리적인 가격의 대중적인 스포츠카여야 했다.

▲ 닛산은 대대적인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GT-R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곤 회장은 원형 테일램프가 꼭 유지되길 주문했다.

1999년, 카를로스-곤 회장이 닛산 경영을 시작하면서부터 GT-R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곤 회장은 취임 후 “반드시 GT-R을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대중적인 닛산 브랜드에는 이미지 리더가 필요했고 기술력을 뽐낼 고성능 스포츠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 GT-R의 실내. 운전에 필요한 것들만 단출하게.

또 스카이라인 GT-R이 일본에서만 판매되던 것과 달리 전세계 시장을 목표로 빼어난 스포츠카를 내놓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닛산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했고 ‘스카이라인’이란 역사적인 이름까지 과감히 버렸다.

▲ 닛산은 포르쉐와 비교할 때, 넓은 트렁크 공간을 꼭 강조한다. 골프백 2개는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 슈퍼카를 비웃는 강력한 성능과 매커니즘

곤 회장은 가장 먼저 엔지니어들에게 성능 향상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GT-R은 기존 스카이라인 GT-R(R34)와는 전혀 다른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닛산 프리미엄 미드십(PM) 플랫폼에 강력한 3.8리터 V6 트윈터보(VR38DETT),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적용됐다. 기존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된 스카이라인 GT-R에 비해 최고출력은 약 200마력 상승했다. 또 출시 당시 480마력이던 최고출력은 계속 발전해 현재는 545마력(유럽버전 550마력), 최대토크는 64.5kg·m에 이른다.

▲ 3.8리터 V6 트윈터보(VR38DETT) 엔진. 이 엔진도 조금 있으면 10년이 다 돼간다.

닛산은 지난해 일본 센다이 하이랜드 레이스웨이에서 2012년형 GT-R의 가속성능을 새로 측정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2.84초로 측정됐다.

▲ "슈퍼카가 아니다", "일본차다" 해도 GT-R의 가속능력은 누구나 인정한다.

GT-R은 스포츠카치곤 무겁다. 약 1700kg에 달하는 중량이지만 엔진과 변속기의 뛰어난 반응, 독특한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동력 손실이 최소화됐고 더욱 효과적으로 힘을 바퀴에 전달해 빠른 가속을 얻는다. GT-R에는 미국의 보그워너가 제작한 세계 최초의 트랜스액슬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적용됐다. 닛산에 따르면 변속속도는 0.005초에 불과해 쉼 없이 출력을 바퀴에 전달한다.

▲ 무식하게 보여도 당시 양산차 중 가장 뛰어난 공기저항계수(0.26 Cd)를 달성했다.

닛산의 사륜구동 시스템인 '아테사(ATTESA)'도 GT-R 전용으로 새롭게 변경됐다. GT-R은 앞차축 뒤에 엔진이 장착됐고 변속기는 뒤차축에 장착했다. 엔진과 변속기는 2개의 드라이브샤프트와 연결됐다. 메인 드라이브샤프트는 엔진의 출력을 뒷바퀴로 전달하고 보조 드라이브샤프트는 변속기에서 나온 힘을 앞바퀴로 전달한다. 또 전자센서와 유압 클러치가 구동배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기본적으로 후륜기반의 사륜구동 시스템이지만 때에 따라 앞뒤 2:98에서 50:50까지 구동 배분이 가능하다. 페라라의 사륜구동 스포츠카인 FF도 이와 비슷한 사륜구동 시스템을 사용한다.

▲ 닛산 GT-R의 사륜구동 시스템인 아테사 ET-S 프로.

닛산 GT-R이 자동차의 성능테스트 서킷으로 유명한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에서 기록한 최고기록은 7분 18초. 이 기록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00-4, 페라리 엔초보다 약 7초, 페라리 458 이탈리아보다 약 10초, 포르쉐 911 터보 S보다 약 14초, 코닉세그 CCX보다 약 15초 빠르다. GT-R보다 빠른 기록을 가진 몇몇 양산차가 있지만 슈퍼카 마니아들은 GT-R이 경량화만 제대로 성공해낸다면 신기록 수립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 가격대비 성능은 GT-R을 따라올 차가 많지 않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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