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불문하고 한국 자동차 브랜드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차종과 맞서 대결할 브랜드는 현대차와 기아차 뿐일지 모른다. 르노삼성이나 한국GM이 만드는 차도 물론 훌륭하지만 아직 세계적인 초대형차 크기의 차를 만든 경험이 없다. 최고급 차를 만드는 실력에서 현대기아차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최근 들어 국내서도 독일 자동차들의 판매가 큰폭으로 늘면서 대형차 소비자들은 당연히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를 함께 비교한다. 그런데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최고급차 현대 에쿠스를 보면 독일 세단에 비해 보수적인 디자인과 느린 발전 속도가 문제였다. 차를 자주 바꾸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일차로의 이탈이 거듭 돼 왔다.

때문에 현대기아차는 더욱 매력적인 차를 만들기 위해 최첨단의 유럽 스타일 최고급차를 내놔야만 했고, 피터슈라이어를 중심으로 독일 디자인센터가 디자인 한 전형적인 유럽형 세단 K9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 기아 K9

◆ 디자인, 실내 공간

사실 처음 만난 K9은 충격이었다. 막연히 BMW를 닮았다고 들었는데, 실제 차를 보니 오히려 같은 디자인 방향으로 달려가 오히려 독일차를 앞질러버린 느낌이었다. 그만큼 밸런스와 개성, 마감이 모두 훌륭했다. 표절시비야 새 차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지만 눈이 익숙해지고 나면 이내 사라진다.

이 차의 기본 플랫폼은 에쿠스와 공유한다. 이 거대한 플랫폼에 디자인을 조금 날렵하게 해서 겉모양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 기아 K9의 뒷모습

뒷좌석에 앉아보니 역시 놀랍게 넓다. 리무진을 제외하면 국산차 중 가장 넓은 실내다. 이 차의 축거(앞뒤 축간 거리, 실내 길이를 나타냄)는 3045mm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일반 모델(3035mm)보다 길고, 장축(L) 모델(3165mm)보다는 짧다. 좌우 폭을 나타내는 윤거도 1625mm로 S클래스보다 25mm 가량 길다. 반면 새로 나온 BMW 7시리즈보다는 축거나 윤거가 모두 조금씩 작다.

한참 감탄하다 운전자 어깨 너머로 속도계를 보니 어느새 시속 240km로 치닫고 있었다. 속도가 지금 240km라고 얘기해주자 운전자는 그제야 속도를 줄였다. 뒷좌석에서는 이렇게 빠를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운전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속도가 나와서 알고는 있었지만 안정감이 우수해 좀 더 속도를 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차는 고속에서 가장 놀랍다. 실내 공간에 풍절음이나 노면음이라 할 만한 소음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동이나 배기음도 거의 들리지 않아 속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속 250km 이상의 초고속으로 달려도 시속 100km 정도로 주행하는 듯한 느낌이다. 계기반과 체감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나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 기아 K9의 뒷좌석은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채워져 있다.

◆ 최첨단 사양으로 중무장

국내 최초 적용된 기능만 해도 너무 다양해 일일히 열거하기 어렵다.

차에 앉으니 우선 계기반과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눈길을 끌었다. 계기반이 꺼졌을 때는 아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모두 그래픽으로만 나타났다. 시동을 거니  너무 다양한 그래픽이 나타나 조금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계기를 좀  단순화 시키는 기능도 있다면 좋겠다. 계기를 모두 그래픽으로 나타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재규어, 레인지로버 등이 이미 시작했고, 이번 기아차에 이어 독일 BMW도 금년내 장착 할 예정이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여러 색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래픽의 색깔도 다양하고 품질 수준이 매우 높았다. BMW가 주도해 아우디 등이 채택해 온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이제 고급 자동차 업계의 필수적인 사양이 돼 가고 있다.

'차선 이탈방지'나 '후측방 경고'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 했다. 실수로 깜박이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차선을 넘거나, 사각지대에 차가 있는데 차선을 옮기려 하면 시트 방석 부분이 진동하면서 운전자에게 경고를 했다.

▲ 기아 K9의 실내

차선 이탈방지가 달린 차는 많지만, 에쿠스는 소리로, BMW는 핸들의 진동으로만 알리는데, 엉덩이에 직접 진동을 가하는 방식은 세계서 처음이다. 긴장을 시켜주는 효과가 탁월하고, 차선 이탈 방향이나 상대차의 방향까지 알 수 있어 출시된 모든 차 중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또, 전자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이 있어 속도에 맞춰 차체 높이와 서스펜션 강도를 차가 스스로 조절해 저속과 고속에서 모두 만족할만 했다. 노면에 돌이 많은 경우라면 버튼을 눌러 차체 높이를 높일 수도 있었다.

뒷좌석을 위한 기능도 당연히 우수했다. 버튼을 한번 누르면 조수석 시트가 앞으로 당겨지는 동시에 숙여져 공간을 여유롭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뒷좌석 좌우에 각기 모니터가 마련돼 있고, 오디오, 비디오는 물론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대부분 기능을 뒷좌석에서 세팅할 수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들은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유럽산 수입차들은 이런 배려가 부족하다.

◆ 연비와 성능 우수…유럽스타일 아닌 강남스타일

K9에 탑재된 람다 V6 3.3 GDi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ps), 최대토크 35.5kg·m를 내는 고출력 엔진이다. 연비도 비교적 우수해 복합연비 기준으로 리터당 9.6km의 연비를 낸다. 람다 V6 3.8 GDi 엔진은 최고출력 334마력(ps), 최대토크 40.3kg·m의 출력이다. 리터당 9.3km의 연비를 갖췄다. K9에 장착된 8단 후륜 자동변속기는 가속성능 및 연비 향상, 부드러운 변속감, 소음 및 진동 개선 등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또 334마력의 엔진 출력은 250km까지 쭉 올려붙일 수 있는 정도의 출력이긴 하지만 스포티하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다. 제네시스 프라다에도 장착된 5.0리터급 엔진을 장착해주면 플래그십이라는 포지셔닝에 걸맞을 듯 하다.

유럽스타일의 겉모습과 달리 이 차의 주행 감각은 BMW나 벤츠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독일브랜드는 최고급 차종에도 운전자가 핸들을 통해 노면을 느끼게 하거나 배기음을 불러 일으켜 가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노면 상황과 실내가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다 보니 스포티한 주행을 하기 어렵고,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 까지 소리를 듣지 못할까 우려도 된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승차감도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산 차 중 노면의 잔 충격이 가장 적게 전달되는 차라 할 수 있다. 뒷좌석에 앉으면 진동이 너무 없어 마치 기차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젊은 층은 이것을 출렁이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 소비자들은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호하는 만큼 비교 시승을 해보면 유럽차보다는 이 차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겠다.

▲ 기아 K9이 주행하고 있다

◆ 과감함은 환영, 가격은 '글쎄'

플래그십 차량이면서도 스포티한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것 자체가 국산차 시장에서는 유래없이 과감한 시도로 평가된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 협회에서도 2012년에 나온 모든 국산차 중 가장 주목할만한 차로 선정한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급감과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경쟁 프리미엄 수입차들과 비교해 가격이 비싸다는 점은 이 차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도 다행히 가격과 옵션을 재정비해 지금은 3.3리터 모델이 5228만원부터, 3.8리터 모델이 6600만원~8538만원으로 트림에 따라 초기에 비해 290만원까지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격 논란이 계속되는건 의아하다. 사실 이 차는 에쿠스와 같은 플랫폼인데, 겉모양만 보고 제네시스급으로 착각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 가격으로 독일 수입세단을 보면 2.0리터 디젤 중형차나 소형 스포츠 세단을 살 수 있는데, 장단점을 떠나 체급이 전혀 다른 차여서 비교가 어렵다. 막연히 수입차라고 좋다고 여길게 아니라 용도에 맞는 차를 선택해야 후회가 없겠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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