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는 본질적으로 여느 SUV와 다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G클래스는 문명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도 원시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도로위의 아마존 원주민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오프로드에서는 강물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만큼 빠릿빠릿하고 힘이 넘친다. 대신 도심에서는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몇몇 불편한 점이야 아랑곳 않을 차가 G클래스다. 그야말로 마니아들을 위한 차며 콘셉트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고 승차감이나 정숙성을 논한다면 오히려 교양 없다는 질책을 받을 수도 있겠다.

▲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벤츠 SUV의 상징이자 가장 강력한 오프로더다.

언제어디서든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정통 오프로더, G클래스를 시승했다. 시승한 모델은 G350 블루텍, 판매가격은 1억 4850만원이다.

◆ “산으로, 강으로”…SUV라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SUV(Sport Utility Vehicle)는 여가 활동에 적합한 다목적 차량을 말하지만, 그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군용 트럭에 뿌리를 두고 있다.

G클래스는 지난 1972년 이란의 요청에 의해 개발에 착수됐고 1979년부터 일반인에게 판매가 시작됐다. 다임러, 무기회사 슈타이어, 자동차회사 푸흐가 함께 개발했다. 현재는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기업인 마그나의 자회사가 된 마그나-슈타이어(구 푸흐)에서 제작을 담당해 오스트리아에서 생산하고 있다. 결국 G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졌지만 정작 벤츠에서 만들진 않는 차다.

▲ Made in Austria. 마그나 슈타이어는 BMW, 벤츠, 크라이슬러, 인피니티 등의 차량을 위탁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G클래스는 지금도 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오프로드 성능은 날고 긴다는 SUV와도 비교를 거부한다. 그래서일까 아직 눈이 수북하게 쌓인 산과 발이 푹푹 빠지는 들판에서의 주행마저 일도 아닌 유희에 가까웠다.

눈이 쌓이지 않았더라도 쉽사리 올르기 힘들 경사. 노면이 불규칙한 것은 물론이고 곳곳에 튀어나온 바위는 뭇SUV의 접근을 방해하지만 G클래스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일반도로에선 어색했던 스티어링휠의 반응도 오프로드에서는 안정적이다. 오히려 오프로드에서 조향성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 눈 쌓인 산길도 거침없이 오른다. 일반 도로에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개의치 않는다.

거침없이 눈 쌓인 산을 올라간다. 겨울용타이어까지 장착됐으니 바퀴가 헛도는 경우가 없다. 그야말로 눈길을 내리찍으며 달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차를 세우고 다시 출발하려니 한쪽 바퀴가 헛돈다. 역시 산길에선 적당한 탄력이 필수다.

이래저래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G클래스에는 ‘디퍼런셜 락’ 버튼이 마련됐다. 전륜 좌우, 후륜 좌우, 센터 등의 디퍼런셜을 따로따로 잠글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단 한 바퀴에만 접지력만 생기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 센터페시아 중앙에 마련된 디퍼런셜 락 버튼. 이 버튼만 이용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헛돌던 오른쪽 앞바퀴 대신 나머지 세바퀴가 힘을 더 한다. 살짝 밀리는가 싶더니 다시 산길을 올랐다. 이처럼 막강한 차량이 아니라면 오프로드는 혼자 와선 안된다.

G클래스의 디퍼런셜 락은 오프로드에서 강력한 무기지만 웬만한 험로에서는 이를 쓸 필요도 느끼기 힘들다. 기본으로 장착된 사륜구동 시스템 자체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은 능동적으로 각각의 바퀴에 토크를 배분하고 엔진은 오프로드에 적합하도록 토크 중심의 세팅이 이뤄졌다.

▲ 산으로 산으로! 눈이 쌓이니 더 재밌는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하다.

◆ 고속도로를 힘껏 달리니, 원인 모를 소음도…

이 차는 정통 오프로더다. 얇은 강가는 우습게 건너고 눈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며 오프로드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차지만 도심에서 오프로드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오프로드보다 도심이나 고속도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 고속도로의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는 오프로드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 도로에선 스티어링휠의 반응이 독특하다. 도심에 특화된 요즘 SUV에 익숙해진 탓일까. 생각한 만큼 돌아주지 않는다. 스티어링휠은 묵직해 유격이 크다고 느껴질 정도다. 오프로드에 적합한 원초적 스티어링 방식인 ‘리서큘레이팅 볼 스티어링(웜기어)’이 적용돼 일반 SUV보다 다소 과장된 조작을 해야 한다.

대중적인 랙앤피니언 방식보다 즉각적이진 않지만 험한 지형에 따라 바퀴가 꺾이며 핸들이 돌아가버리는 일이 없고, 조향감도 균일해 오프로드에는 발군이다.  스티어링휠 조작은 점차 몸에 익숙해지니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정작 고속에서 견디기 힘든 것은 소음이다.

▲ 3.0리터 V6 엔진은 최고출력 211마력, 최대토크 55.0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공회전시에는 생각 외로 조용하다.

딱 봐도 G클래스는 공기역학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차체에 부딪히는 바람이 거세다. 고속에서는 엔진 소리보다 바람소리가 더 크다. 노면을 타고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도 상당하고 실내의 부품이 진동에 떨려 불쾌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 공기역학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 각을 제대로 잡았다. 그러다보니 외부 소음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코 빨리 달리기 좋은 차는 아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러한 소음을 못 느끼게 할 정도로 우수한 하만-카돈 오디오 시스템을 적용했다. 특히 저속이나 공회전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디젤 차량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소음이 절제 됐다. 무리하게 고속으로 달리지만 않으면 큰 불편은 없으니 한층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겉과 속이 다른 차, “겉은 20세기 속은 21세기”

겉모습은 마초의 성격이 강하지만 속은 매우 고급스럽다. 또 겉은 클래식카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속은 매우 세련됐다.

우선 직선이 강조된 외관 디자인은 힘차다. 강인하고 절도 있다. 역시 군대는 각이 생명인가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흔히 얘기하는 아방가르드는 군대용어로 보면 전장에서 가장 앞서 적진으로 돌진하는 부대를 뜻한다. G클래스는 아방가르드 그 자체다.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디자인은 다른 차들을 한없이 소심하게 만든다.

▲ 실내는 영락없는 벤츠다. 럭셔리 오프로더란 이런 것이지만 실내서는 남성다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아쉽기도 한다.

또 G클래스는 세련됐다. 동네 양아치처럼 일부러 이빨을 뽑고 문신과 삭발을 해서 무서운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포스'가 넘쳐흐른다. 꾸미는 것과 근본적인 강인함은 그 깊이에서 차이가 난다.

이에 반해 실내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다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과 비슷한게 이번 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얼핏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랜드로버 디펜더와 달리 투박하고 원초적인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실용적이고 고급스러움을 가미했다. 중동 부호나 연예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만큼 그에 적합한 고급스러움이 요구됐기 때문일 것이다. 

▲ 디퍼런셜 락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기어노브는 G클래스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실내는 호화롭게 꾸며졌다. S클래스 수준이다. 천장의 마감도 눈에 띄고 등받이, 엉덩이 부위에 적용된 에어쿠션으로 탑승자 체형에 꼭 맞게 조절이 가능한 시트도 특징이다.

기어 레버는 일반 차량의 그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마땅히 굵고 커야할 것(?)이 작고 초라하니 허탈감이 느껴진다. 조작감에서도 남성적인 감성은 없다.

▲ 에어 쿠션 기능이 적용된 시트. 공기 압축으로 몸에 꽉 맞게 시트를 조절할 수 있다.

◆ 전통을 중요시 하는 차, “살아있는 역사”

G클래스는 여러 가지로 신기한 점이 많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사양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유독 전통에 민감하다.

▲ 외부로 돌출된 경첩과 문 손잡이. 열고 닫을 때 들리는 '철커덕' 소리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첫 출시 이후 외관 디자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LED 주간주행등 같은 현대적인 기술을 가미했을 뿐 전체적인 모습은 그대로다. 후진등은 전통적으로 한쪽만 들어오고 차체는 무거운 강철판으로 제작됐다. 문을 여는 방식이나 위부로 돌출된 경첩, 각종 기계식 부품 등 불편하거나 주행에 불리한 여러 부분이 모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 되고 있다.

▲ 아마도 G클래스는 앞으로도 특유의 멋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차는 G클래스니까”라며 이해하고 오히려 이 차를 특별하게 한다. 또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철커덕’하는 G클래스만의 독특한 소리는 마초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고 그것을 지켜가는게 G클래스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라는 생각이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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