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쿄모터쇼의 어려움을 비웃듯 도쿄오토살롱은 올해 규모가 더 커졌다. 관람객도 넘쳐났고 부스마다 끊임없이 이벤트가 진행됐다. 국내선 레이싱모델이 전시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가장 큰 인기지만 일본에서는 차를 만든 사람이나 차를 모는 이에게 더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씩 엔지니어, 드라이버들의 토크쇼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그 중 닛산 니즈모(Nismo, Nissan Motorsport Ltd) 부스는 발 디딜 틈 없이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특히 여성 관람객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과 카메라가 향한 곳엔 키가 훤칠한 금발의 드라이버가 한명 서 있었다.

▲ 닛산 델타윙과 마이클크룸

◆ 닛산 델타윙의 드라이버, 마이클크룸을 만나다

북적거리는 닛산 니즈모 부스 뒤편, 관계자들을 위한 공간에서 가장 독특한 레이싱카인 델타윙을 운전하는 드라이버이자 ‘2011 FIA GT1 월드챔피언십’ 드라이버스 챔피언인 마이클크룸(Michael Krumm)을 마주했다.

연이은 됴코오토살롱 스케줄에 힘들 법도 한데 마이클은 미소를 띠며 기자를 반겼다. 마이클은 “우리 언제 본적 있지 않느냐?”라며 넉살을 부렸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오히려 그는 “그렇다면 난 정말 당신을 본 게 틀림없다. 작년에 서울에 간적이 있는데 아마 지하철에서 본 것 같다”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 현지 닛산 및 니스모 관계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 마이클

마이클크룸은 1970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4살 때 카트 레이싱을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했다. 포뮬러 레이스의 초급 경기인 ‘포뮬러 포드(Formula Ford)’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고 점차 클래스를 높였다.

독일에서 활동하던 그가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것은 1994년. 단번에 그는 일본 F3 챔피언에 등극하며 두각을 보인다. 그 후 투어링카, GT레이스 등으로 영역을 넓혀 경력을 쌓았고 일본 슈퍼GT를 주무대로 활약 중이다. 특히 지난 2011년에는 ‘FIA GT1 월드 챔피언십’에서 ‘닛산 GT1 GT-R’을 타고 드라이버스 챔피언에 올랐고 지난해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는 닛산 델타윙(Delta Wing)으로 몰기도 했다.

▲ 마이클이 몰았던 FIA GT1 GT-R(마이클은 우측에서 두번째)

또 하나 마이클크룸의 색다른 이력(?)은 일본인과 결혼한 것인데 그의 아내는 일본 여자 테니스의 신화적인 존재인 다테키미코다. 한때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랐던 그녀의 인기는 일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 델타윙을 모는 드라이버, “모든 것이 이색적”

마이클은 일본에 온 직후부터 닛산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데 현재는 르망24시 내구레이스에 참전하기 위해 제작된 닛산 델타윙을 몰고 있다.

델타윙은 영국 디자이너 벤바울비가 디자인을 맡았고 미국 모터스포츠계의 거물들이 차량 제작에 참여했다. 여기에 닛산이 엔진 공급과 메인스폰서를 맡았고 니즈모에서 엔지니어링 부문에 관여했다.

델타윙은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세계 최초로 마하 3의 속도를 넘긴 SR-71 블랙버드나 시속 1600km에 달하는 초음속자동차와 비슷하다.

▲ 닛산 델타윙

마이클은 “처음 델타윙을 봤을 땐 충격적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말했다. 그도 이런 독특한 차를 일전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앞바퀴가 매우 좁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난 이 차가 절대 코너를 돌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이색적이었다”고 첫 느낌을 설명했다.

기자도 델타윙을 처음 봤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첫 주행 때의 느낌을 물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아직도 그 때의 설렘이 남아 있다. 처음 델타윙의 모습을 봤을 때보다 주행을 때가 더 충격적이었다. 닛산 니즈모 엔지니어가 자신 있게 차를 권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너무나 완벽했다. 코너에서도 매우 빠르고 정확했고 300마력의 최고출력이지만 GT카만큼이나 폭발적이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말했다.

▲ 수직핀은 마치 전투기의 뒷날개를 보는 것 같다

마이클은 이 차가 매우 가볍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에게 “아마 당신 혼자서도 차의 앞부분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반적인 승용차에 적용되는 엔진을 달고 레이싱에 참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닛산 니즈모의 기술력은 대단하다. 델타윙은 차체 무게, 엔진 배기량 등은 일반 레이싱카의 절반이지만 속도는 그에 못지않고 연료효율은 더 우수하다. 닛산은 이러한 레이싱카 연구 개발을 승용차 다운사이징에 접목될 것이다. 델타윙은 정말 좋은 콘셉트의 레이싱카”라고 강조했다.

◆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참가…그리고 아쉬운 탈락

닛산 델타윙은 지난해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참가했다. 경기를 주최하는 프랑스 자동차 협회 ‘오토클럽 드 뤠스트(ACO)’가 실험적인 경주용차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해 새롭게 마련한 ‘개러지 56(Garage 56)’에 초대한 것이다. 그래서 0번의 번호판을 달고 출전했다. 특별 이벤트로 참가한만큼 가장 먼저 골인해도 챔피언이 되진 못한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주행 중 다른 차와 충돌 사고가 발생해 그도 완수하지 못했다. 

▲ 마이클크룸이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주행하는 모습

마이클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는 리타이어가 흔한 일이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하니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아우디가 우승한 것은 사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고로 아쉽게 경기를 포기했지만 델타윙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완주하기도 했다. 어쨌든 사고 전까지 우리는 잘 달리고 있었고 차량 콘셉트를 보는 이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동료들과 엔지니어들 모두 탈락을 슬퍼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 사고난 델타윙을 수리하고 있는 사토시모토야마

닛산 델타윙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무리한 레이스를 펼친 도요타 TS030 하이브리드 머신의 희생양이 됐다. 도요타 머신의 드라이버는 카즈키 나카지마. 그는 F1 드라이버 출신으로 F1에서도 꽤나 자주 충돌사고를 냈었다. 마이클은 인터뷰 도중 “나카지마!”를 연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 GT클래스의 강자, 닛산 GT-R…“올해 국내서 첫 선”

마이클은 델타윙 외에도 슈퍼GT에서 ‘모툴 오테크 GT-R(Motul Autech GT-R)’를 타고 있다. 그는 오는 5월 이 차를 몰고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을 질주할 것이다.

기자는 마이클에게 “오는 5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슈퍼GT가 열린다. 한국에서 레이스하는 것은 처음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나와 스텝 모두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경기이니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한국팬들에게 GT레이스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GT-R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마이클이 슈퍼GT에서 타게 되는 모툴 오테크 GT-R은 닛산의 모터스포츠 디렉터 니즈모(Nismo)가 개발을 주도했다. 3.4리터 VRH34B 엔진이 장착돼 530마력(ps)의 최고출력과 45.0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경량화를 통해 총중량이 1100kg에 불과하다. 또 후륜구동을 방식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 슈퍼GT GT500 클래스에서 활약 중인 모툴 오테크 GT-R. 오는 5월 국내서 이 차량을 직접 볼 수 있다

마이클의 GT-R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니즈모 GT-R 레이싱카는 물론이고 일반 GT-R도 매우 뛰어나다. 그냥 그 자체로 경기에 나가도 될 정도다. 아무리 비싼 슈퍼카도 GT-R를 앞지르긴 힘들다”고 말했다.

마이클이 닛산 GT-R로 출전하는 슈퍼GT는 유럽 중심의 FIA GT, 독일 중심 DTM와 더불어 세계 3대 GT대회다. 일본을 주무대로 경기가 개최됐던 슈퍼GT는 올해부터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에 이어 태국에서도 대회를 연다. 국내서는 오는 5월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다.

◆ 레이스 핏줄, '기술의 닛산' 이해 돼

델타윙 앞에서의 사진 촬영을 끝으로 인터뷰는 끝났다. 5월에 한국에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마이클과 헤어졌다. 여전히 닛산 니즈모 부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닛산도 닛산이지만 닛산의 모터스포츠를 담당하는 니즈모의 인기가 대단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적어도 국내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닛산은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모터스포츠에 관여했다. 모터스포츠를 통한 열정과 노력은 당연히 승용차에도 이어진다. ‘기술의 닛산’이라고 불렸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수억원의 슈퍼카 잡는 GT-R이 하루아침에 뚝딱 나왔을 리 없다.

현대차도 내년부터 월드랠리침피언십(WRC)에 복귀한다. 보여주기 위한 단발적 참여가 아닌 지속적인 레이스가 됐으면 좋겠다.

도쿄=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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