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단순한 공산품으로 여기기 쉽지만, 국가별로 각양각색의 개성을 갖기 마련이다. 실은 마치 인종처럼 자동차도 지역별로 독특한 특색을 지닌다.

유럽은 인접한 국가라고 해도 자동차의 성격이 판이하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가 몰려있는 독일은 고속안전성이 뛰어나고 전체적인 성능이 뛰어난 고급차를 잘 만든다. 하지만 바로 옆 나라인 프랑스는 그보다 고급스럽지는 못해도 흥미롭고 실용적인 차를 만든다. 이탈리아는 변변한 대중차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반면, 세계적인 슈퍼카는 잘 만들어내는 화끈한 면이 있다.

▲ 독일에서 도로에서 본 기아차 신형 씨드

인접국가임에도 각각의 특징이 뚜렷한 차가 나오는 이유는 각국의 국민성이 반영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로환경에 따른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로를 비교해보면 푸조, BMW, 페라리 등의 브랜드가 왜 각기 다른 성격을 띠는지 짐작할 수 있다.

◆ 프랑스, 좁고 막히는 시내…작고 편리한차 낳아

프랑스 파리의 시내 도로는 유난히 폭이 좁다. 또 도로 한쪽에는 대부분 주차된 차량이 세워져 있다. 반대편 차선에서 버스라도 다가오면 인도로 차를 바짝 붙여야한다. 좁은 도로 폭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작은 차를 선호하게 만든다. 협소한 주차공간도 작은 차를 선호하게 만드는데 한몫 거든다.

▲ 파리 시내 도로는 상당히 좁고 차량 통행도 많다

파리 시내는 출퇴근시간이 아니더라도 365일 교통체증이 상당하다. 수많은 관광객이 파리를 찾는데다 각종 축제로 도로를 통제할 때도 많다.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 엔진 공회전을 줄여 연료효율을 높이자는 취지로 개발된 ‘공회전 제한장치’다. 유럽에서는 일반화 된 이 장치도 독일차와 프랑스차의 성향이 다르다. 

▲ 도로노면도 불규칙한 곳이 많다. 서스펜션 세팅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독일차들은 재시동의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반면, 푸조와 시트로엥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소음이 적고 부드러운 반응을 강조한 ‘공회전 제한장치’를 사용한다. 프랑스 부품업체 ‘발레오(Valeo)’의 부품을 공급받는데 발레오는 위화감이 적은 ‘공회전 제한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교통체증이 극심한 파리에서 수많은 모의주행을 거쳤다고 밝혔다.

◆ 독일, ‘속도무제한’ 아우토반과 복합적인 도로환경

프랑스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독일로 이동하게 되면 차량의 이동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대부분 시속 110km지만 독일은 대부분 시속 130km 이상이기 때문이다. 

▲ 독일 아우토반. 경사는 물론 코너가 상당한 곳도 종종 있다.

흔히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속도무제한’이라고 알고 있지만 제한속도가 없는 구간은 점차 줄고 이제는 시속 100km~130km 구간이 꽤 많다.

운전습관도 꽤 다르다. 파리의 운전자들에 비해 독일 운전자들은 운전실력도 탁월하고, 매너도 훨씬 좋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규정 속도를 꽉 채워서 달리고, 추월차선인 1차로는 추월할 때 이외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속도무제한 구간이더라도 전체 이동속도가 올라갈 뿐 1차로를 주구장창 달리는 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넘어오니 큰 차들이 속속 눈에 띈다. 프랑스에선 푸조, 르노의 소형차가 대부분이었다면 독일 국경을 넘자 마자 독일차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의 대형차는 물론, SUV까지 눈에 띈다. 대체적으로 독일이 더 부유한 탓도 있겠지만, 도로가 더 넓고 공간 여유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뻥뚫린 독일 아우토반 1차선. 운전자들 매너가 워낙 우수해 2차선 차가 넘어올 걱정이 없다. 

또 독일은 산악 지역이 많다. 구불구불 굽이친 국도도 많고 고속도로도 물결치듯 휘어진 곳이 많다.

이러한 복합적인 도로환경이 우수한 독일차를 만들어낸다. 아우토반을 잘 달리기 위해선 빠르고, 고속안정성이 뛰어나야 한다. 빠른 속도에서도 싸구려 풍절음이 들려선 안되고, 승차감은 탄탄해야 한다. 더구나 잦은 코너에서도 날렵한 움직임으로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해야 한다.

◆ 이탈리아, ‘뻥’ 뚫린 고속도로…슈퍼카의 밑거름

이탈리아를 종단하는 A1고속도로는 지평선 끝까지 쭉 뻗어있다. 마치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이탈리아인을 연상케 한다. 웬만해선 휘어지는 곳이 없다.

3차선 혹은 4차선의 넓은 고속도로를 몇 시간 동안 직진만하는 것은 고역이다. 따분하고 졸음운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

▲ A1 고속도로는 오로지 직진이다. 탑라이더 김한용 기자가 시속 130km에서 여유롭게 바나나를 먹고 있다.

비행기 활주로 같은 고속도로에는 무작정 빠른 차가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가 모여 있다.

슈퍼카 브랜드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수많은 이들의 드림카로 꼽히는 페라리, 가장 남성적인 슈퍼카를 만드는 람보르기니, 희소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파가니, 이밖에 디아토, 데토마소 등 다양한 슈퍼카 브랜드가 있다. 또 바이크계의 슈퍼카인 듀카티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 국내 도로 특징…자동차 업계에 '마이너스'

국내 도로환경은 자동차 만들기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구석이 더 많다.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 되겠다.그러다보니 자동차 또한 별다른 개성이 없고, 실제 주행 성능보다는 그저 이론적 숫자에만 강해지고 있는 듯 하다. 

특히 고속도로는 제한속도가 낮고 안전시설도 허술하다. 국내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가 가장 높은 곳이 기껏 시속 110km다. 그나마도 꽉 막혀 제대로 달릴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산차도 계속 발전하며 점점 빠르고 안정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서는 달릴 수 없는 셈이다. 제한속도를 높이면 위험성도 같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이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 국내 도로에서는 쏘나타 정도의 성능이면 충분하다

고속도로에서는 달리는 속도보다 운전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안전에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 고속도로는 여전히 1차선을 느긋하게 달리는 운전자가 태반이다. 걷거나 뛰지 말라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꼭 왼쪽을 비워두면서 고속도로에선 유독 천하태평인 이유를 모르겠다. 

시속 100km 도로에서 100km로 주행하는데 왜 1차선을 비워야 하느냐는 어처구니 없는 적반하장도 있다. 하지만 도로에는 속도제한만 있는게 아니다. 1차선은 추월선이고, 이곳에서 정속 주행하는 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도로교통법은 또 우측으로 추월하는 것 또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1차선을 꾸준히 달리는 것은 후미 차에게 불법을 저지르게 하는, 도로의 최고 무법자라 할 만 하다. 

요는, 도로 소통이 빨라지도록 함께 노력해야만 우리도 주행성능이 우수한 차를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좋은 자동차는 단순히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지형, 도로, 고유의 문화, 운전예절 등 복합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유럽 브랜드의 자동차가 그저 기술력만으로 명차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다. 자동차 기술 발전과 함께 도로 문화도 함께 성장해야만 세계 최고의 명차가 탄생할 수 있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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