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를 쓰면서 '레일을 깔아놓은 것 같은 주행감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는 두가지.

첫째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탈 때다. 포르쉐나 BMW를 탈 때면 밋밋한 노면 위를 달리는게 아니라 바퀴가 롤러코스터 레일에 끼워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둘째는 정반대인 기아 K9 같은 경우다. 레일은 레일인데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KTX를 탄 느낌이다. 무려 시속 250km의 속도로 달리는 동안도 진동과 소음이 느껴지지 않고 착 가라앉은 채 달리는 모습 때문이다.

시속 250km로 달리는 도로위 KTX, K9을 시승했다. 느꼈던 여러가지 요소 중 장점 3가지와 단점 3가지를 추려냈다.

◆ 장점 1. 조용하고 넓은 실내공간

겉모양은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실내에 들어서니 의외로 넓었다. 겉모양은 날렵하지만 현대차 에쿠스와 플랫폼을 공유해 국산차 중 가장 넓은 실내를 갖췄다는 설명이다.

이 차의 축거(앞뒤 축간 거리, 실내 길이를 나타냄)는 3045mm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일반 모델(3035mm)보다는 조금 길고, 장축(L) 모델(3165mm)보다는 짧다. 좌우 폭을 나타내는 윤거도 1625mm로 S클래스보다 25mm 가량 길다. 반면 새로 나온 BMW 7시리즈보다는 축거나 윤거가 모두 조금씩 작다. 공간에 대한 느낌도 딱 그 정도.

▲ 기아 K9의 주행 모습

차를 고속으로 달려보니 더 놀랍다. 실내 공간에는 풍절음이나 노면소음이라 할 만한 소음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동도 없고 배기음도 들리지 않아 속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속 250km 이상의 초고속으로 달려도 시속 100km 정도로 주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기반과 체감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나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 장점 2. 다양한 첨단 기능

국내 최초 적용된 기능만 해도 너무 다양해 일일히 열거하기 어렵다.

차에 앉으니 우선 계기반과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눈길을 끌었다. 계기반이 꺼졌을 때는 아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모두 그래픽으로만 나타났다. 시동을 거니  너무 다양한 그래픽이 나타나 조금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계기를 좀  단순화 시키는 기능도 있다면 좋겠다. 계기를 모두 그래픽으로 나타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재규어, 레인지로버 등이 이미 시작했고, 이번 기아차에 이어 독일 BMW도 금년내 장착 할 예정이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여러 색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래픽의 색깔도 다양하고 품질 수준이 매우 높았다. BMW가 주도해 아우디 등이 채택해 온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이제 고급 자동차 업계의 필수적인 사양이 돼 가고 있다.

'차선 이탈방지'나 '후측방 경고'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 했다. 실수로 깜박이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차선을 넘거나, 사각지대에 차가 있는데 차선을 옮기려 하면 시트 방석 부분이 진동하면서 운전자에게 경고를 했다.

▲ 기아 K9의 실내

차선 이탈방지가 달린 차는 많지만, 에쿠스는 소리로, BMW는 핸들의 진동으로만 알리는데, 엉덩이에 직접 진동을 가하는 방식은 세계서 처음이다. 긴장을 시켜주는 효과가 탁월하고, 차선 이탈 방향이나 상대차의 방향까지 알 수 있어 출시된 모든 차 중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또, 전자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이 있어 속도에 맞춰 차체 높이와 서스펜션 강도를 차가 스스로 조절해 저속과 고속에서 모두 만족할만 했다. 노면에 돌이 많은 경우라면 버튼을 눌러 차체 높이를 높일 수도 있었다.

뒷좌석을 위한 기능도 당연히 우수했다. 버튼을 한번 누르면 조수석 시트가 앞으로 당겨지는 동시에 숙여져 공간을 여유롭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뒷좌석 좌우에 각기 모니터가 마련돼 있고, 오디오, 비디오는 물론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대부분 기능을 뒷좌석에서 세팅할 수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들은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유럽산 수입차들은 이런 배려가 부족하다.
 
◆ 장점 3. 연비와 성능이 우수

K9에 탑재된 람다 V6 3.3 GDi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ps), 최대토크 35.5kg·m를 내는 고출력 엔진이다. 연비도 비교적 우수해 신연비 기준으로 리터당 9.6km의 연비를 낸다.

람다 V6 3.8 GDi 엔진은 최고출력 334마력(ps), 최대토크 40.3kg·m의 출력이다. 신연비 기준으로 리터당 9.3km의 연비를 갖췄다.

K9에 장착된 8단 후륜 자동변속기는 가속성능 및 연비 향상, 부드러운 변속감, 소음 및 진동 개선 등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 기아차 K9의 경쟁차와 동력 성능 비교/사진=기아차 K9 출시행사 프리젠테이션 자료

◆ 단점 1. 어디선가 본듯한 첫 인상

K9의 출시전부터 BMW를 베낀 디자인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정작  직접 보니 BMW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반면 이 차를 한참 시승한 후 BMW를 보니, 차가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BMW가 오히려 둔해보이고 작아보였다. 디자인을 참고하면서 조금씩 향상시켰던 탓인 듯 하다. 

▲ 기아 K9의 뒷모습

디자인에는 독창성이나 예술성도 중요하겠지만, 목표는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이 좋은 인상을 받도록 하는데 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기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내려질 일이다. 최근 소비자들의 선택을 보면, 디자인의 유사성을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 단점 2. 유럽식 스포티는 아니다

이 차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 문제다. 가속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 컨트롤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속도계를 보지 않고 주행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다.

차체의 서스펜션의 출렁이는 느낌도 상당 부분 잡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승차감은 소프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산 차 중 노면의 잔 충격이 가장 적게 전달되는 차라 할 수 있다. 뒷좌석에 앉으면 마치 기차에 앉은 듯한 느낌인데, 시승자가 운전을 하도 험하게 하니 출렁이는 느낌에 약간 멀미도 났다.

334마력의 엔진 출력은 충분하고도 남는 정도. 250km까지는 쭉 올려붙일 수 있는 정도의 출력이긴 하지만 스포티하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다. 제네시스 프라다에도 장착된 5.0리터급 엔진을 장착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차급을 나누기 위해서였는지 아직 K9에는 초대형엔진까지는 장착되지 못한다.

▲ 기아 K9의 앞모습

비교대상으로 삼은 독일차는 최고급 모델도 스포티를 지향한다. 경쟁모델을 압도하는 엄청난 출력을 내고, 실내로 엔진음이 유입되고, 노면 충격도 느껴지는데 K9은 이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차의 스포티한 주행감각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취향에 따른 것인만큼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게 중요하다. 
 

◆ 단점 3. 너무 비싼 가격

기분좋게 시승을 마치고, 가격을 살펴보니 좀 당황스럽다. 시승차는 8천640만원짜리 풀옵션 모델이었다. 기아차 K9의 판매가격은 3.3 모델의 경우 가장 낮은 프레스티지 모델이 5290만원, 노블레스는 5890만원, 노블레스 스페셜 6400만원이다.
 
3.8리터 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프레스티지 6340만원, 프레스티지 스페셜 6850만원, 노블레스 7230만원, 노블레스 스페셜 7730만원, 프레지던트 8640만원이다.

경쟁 럭셔리 브랜드 수입차보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이미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쌍용차와 GM 대우가 이런 고가 차량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이런 가격은 아무래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일반인이 제 아무리 한땀한땀 정성들여 백을 만들었다고 해도 샤넬 구찌 가격에 팔 수는 없는 것 처럼 자동차도 잘 만드는 것과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 '초호화차'의 반열에 오르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사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돈 8천만원 넘는 자동차 가격을 책정 할 수 있는 양산 브랜드는 불과 몇개 정도다. 독일 메이커 중에서도 벤츠, BMW 브랜드 정도만 성공하고 다른 브랜드는 어렵다는게 여러차례 드러났다. 비교적 브랜드 쏠림이 적다는 미국서 조차 벤틀리 컨티넨탈GT는 2억원이 넘어도 용납 되지만 같은 공장에서 나오는 폭스바겐 페이톤은 1억원이 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장 비싼 에쿠스도 미국선 우리돈 8천만원을 결코 넘지 못한다.

반면 한국 고급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국산차의 일정 쿼터가 보장돼 있다. 일부 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 등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대부분 출근용으로 국산차를 선택하는데, 이들은 국산차 중 무조건 가장 비싼 차를 선택한다. 때문에 1억4천만원이 넘는 초고가 에쿠스 리무진도 국내에는 나와있다. 이런 국내 소비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괜히 가격을 올려잡은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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